2025/04/26

복음의 시작 (마가복음 1장 1절_20250427)




1. 들어가며
인생은 목표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시작이 더 중요하다.
신앙인의 시작점은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부르심, 예수 그리스도 안의 정체성,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진정한 만족은 외적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조화를 이룰 때 온다.

2. 복음이란?
복음은 예수님 자체이며, 또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가 복음"임을 선포했고, 마가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복음으로 기록했다.
복음을 알면 현실의 고난을 이길 수 있다. 복음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참된 소망을 제공한다.

3. 복음의 시작
마가는 예수님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베드로를 통해 복음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마가는 대로마 화재와 기독교인 박해 속에 절망하던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복음의 시작"은 단순한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과 연결)
예수님은 혼돈과 절망 속에서도 새 창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 참된 왕이다.

4. 새 창조 / 새로운 피조물
마가는 자신의 실패(선교 도중 포기)와 회복(베드로와의 동역)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경험했다.
그 경험으로 절망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이 새로운 시작이 됨을 확신하며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과거 실패를 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고린도후서 5:17)

5. 나오며
우리는 세상 속에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지만, 신앙의 토대가 가장 중요하다.
삶의 기반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왕 되신 예수님이어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힘은 복음의 시작이신 예수님을 붙드는 데 있다.
한 주간도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승리하는 삶을 살자.





[적용 질문]
1. 내 삶의 시작점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달려가는 삶의 목표는 복음에 뿌리내린 것인가요, 아니면 세상의 기준에 맞춘 것인가요?

2. 실패와 실망 속에서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나요?
실패한 경험이 있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어디에서 얻고 있나요?
마가처럼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3. 예수님이 내 삶의 참된 ‘왕’이신가요?
혹시 나는 세상의 성공, 인정, 편안함을 더 높은 왕으로 삼고 있지는 않나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 오늘 결단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4.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혼돈, 공허, 어둠'은 무엇인가요?
내 인생의 어려운 영역에도 예수님이 새 창조를 시작하실 것을 믿고 있나요?
그 믿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5.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시작’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내 경험과 회복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복음의 소망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무엇인가요?

2025/04/19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 (마태복음 28장 1~4절_20250420)



오늘은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이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일어난 그 특별한 시간에 집중해 말씀을 나누어 보려 합니다.

1.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
마태복음 28장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우리말 번역이 참 절묘합니다.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 아직 하루가 시작되기 전, 어둠과 빛 사이의 조용한 순간, 그 찰나의 시간, 바로 그 틈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 십자가 후의 안식일 – 쉼이 없는 안식
한번 상상해 보세요. 제자들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의 찬양 속에 제자들도 가슴이 벅차고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며칠 사이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호산나’ 외치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는 폭도로 바뀌었고, 예수님은 처형당하셨으며,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었지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그 날, 제자들은 깊은 슬픔과 두려움, 분노와 자책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안식의 날이었지만, 그 누구도 참된 쉼을 누릴 수 없는 안식일, ‘절망의 안식일’이었습니다.

3.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제자들은 그 절망 속에서 평생 갇혀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겠지요. 안식 후 첫 날, 바쁜 일상이 다시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데 급급하다 보면, 진짜 중요한 것들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바쁨’이라는 무덤 속에 말씀과 기도, 묵상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은 그 경계의 시간을 다시 보여줍니다. 안식일과 첫날 사이, 절망과 일상 사이, 그 틈에서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소망이 사라진 과거와 불안한 미래 사이, 그 중간에 새 생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4. 증인의 자리
사랑하는 여러분, 그 빈 무덤이 혼자서는 부활의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시신이 옮겨졌을 수도 있고, 도난 당했다고 오해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그 빈 무덤에서 누구를 만났느냐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권력이나 종교 지도자들 앞에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당신을 믿고 따랐던 평범한 제자들,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변화된 삶으로, 기쁨으로,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활의 증인입니다!”

5. 나오며 – 오늘의 증인
그 증인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김00 형제가 학습세례문답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 형제는 2018년, 독일 교환학생으로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카셀의 한 아름다운 교회에서 공동체의 사랑을 처음 경험했고, 지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함부르크에 정착해 다시 열린문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김00 형제가 지금 그의 인생에서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을 지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의 고백이 새로운 부활의 증언이 되어 우리 공동체에 큰 은혜로 다가오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열린문교회 여러분, 김00 형제의 신앙 여정 위에 따뜻한 기도와 응원의 마음을 함께 모아주시길,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1.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 – 나의 경계의 시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지금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과 같은 절망과 일상 사이의 틈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소망을 어떻게 느끼고 계신가요?

2. ‘절망의 안식일’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잃고 무너졌던 제자들처럼, 슬픔과 침묵 속에 지냈던 시간이 여러분의 삶에도 있었나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나 사람을 통해 주셨던 위로와 회복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보세요.

3. 빈 무덤은 ‘증거’가 아니라 ‘만남’에서 증언된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떤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나요?
나의 신앙 고백과 삶이 누군가에게 부활의 증거가 되어줄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4. 나의 분주함은 무엇을 덮고 있는가?
요즘 삶이 너무 바빠서 말씀과 기도, 묵상을 잃어버리진 않으셨나요?
분주함이라는 무덤에서 다시 주님과 연결되기 위해 내가 회복하고 싶은 습관이나 마음은 무엇인가요?

5. 나는 부활의 증인인가?
내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삶으로 보여준 경험이 있다면 나눠보세요.
나의 오늘 하루, 나의 말과 행동, 관계 속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실천할 한 가지가 있다면?


2025/04/12

하나님 백성이십니까? (마태복음 22장 15~22절_20250413)

 



1. 들어가며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 백성이십니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으로 독일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란 눈에 보이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내는 삶을 통해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시작됐을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부터 하나님 나라는 시작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짜 왕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정치적 해방자나, 로마 제국을 무너뜨릴 유대 왕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셨지만, 왕 되심을 감추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왕위 즉위식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포함된 ‘고난주간 화요일’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십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몇 가지 비유를 통해, 열매 맺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위선을 지적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돌이키기보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2. 데나리온 이야기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질문을 준비합니다. 그 질문이 뭡니까?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이 질문 자체가 덫입니다. 예수님이 “세금을 내라”고 하시면 유대 민족주의자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고, “내지 마라”고 하시면 로마 당국에 반역자로 고발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은 본래 정치적으로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목적 하나로 뭉친 겁니다. 불의한 목적 앞에서는 얼마든지 손잡는 것이 세상의 방식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시기 전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여라” 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데나리온을 꺼내 보입니다. 이 동전은 당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얼굴이 새겨진 은화로, 황제를 신격화하는 문구도 함께 적혀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민감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돈을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우상이다” 하면서도, 생활에서는 그 돈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예수님은 이 한 마디로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십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그들의 대답은 “가이사의 것입니다”였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말씀은 단순한 슬기로운 답변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과 우선순위가 누구를 향해 있는지를 드러내는 날카로운 진단입니다.


3. 가이사의 것을 사랑한 사람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외적으로는 신앙 좋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삶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 있었습니다. 그 데나리온은 그냥 화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힘이었고, 그걸 많이 갖는 것이 곧 안전이고, 복이라고 믿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셨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진짜 메시아는 돈, 명예, 권력이었기 때문이지요.

4.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예수님께서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셨을 때, 단순히 동전만 가리킨 게 아닙니다. 그 말씀 속에는 “그렇다면 너는 누구의 것이냐?” 즉,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라는 질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창 1:27)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형상은 히브리어로 ‘첼렘’인데, 그림자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곧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림자는 본체와 떨어질 수 없고, 본체의 모양을 어렴풋이 드러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림자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황제의 형상, 데나리온의 가치를 좇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나는 하나님 백성입니까?

5. 나오며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면서, 사실상 이렇게 물으신 겁니다: “너는 누구의 것이냐? 정말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여러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은 거룩하고 종교적인 무엇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땀 흘려 일하는 그 자리, 가정과 일터, 작은 순종과 헌신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일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삶” 아니겠습니까?


[적용 질문]
- 나는 누구의 것입니까? 
- 나는 내 삶에서 누구의 형상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 내 안에 희미해진 하나님의 형상은 회복되고 있습니까?

이 질문들을 마음에 품고, 다가오는 한 주간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Summarized through Chat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