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8

하늘이 전하는 하나님의 영광 (시편 19장 1~6절_20250629)




1. 자연 속 예배의 의미
오늘은 예배당이 아닌 자연 속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햇살, 바람, 새소리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자연은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예배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신앙고백임을 되새깁니다.

2. 자연과 성경 – 두 가지 계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는 두 가지 방법을 주셨습니다:
일반 계시: 자연
특별 계시: 성경
시편 19편은 특별 계시(성경)인데, 일반계시로서 자연 천하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함을 증거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말씀처럼, 자연은 하나님의 존재를 소리 없이 증언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보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더 깊이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갈릴레이와 케플러 같은 신앙인 과학자들은 우주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했습니다.
과학은 “어떻게?”, 신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서로 다른 길로 같은 진리를 향해 갑니다.

3. 자연의 설교 – 말 없는 메시지
시편 19:2-4은 자연이 소리 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전파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설교자”입니다. 바람, 하늘, 새소리 모두가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지금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 공동체로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4. 태양처럼 차별 없는 하나님의 사랑
시편 19:4-6에서 태양은 하나님의 창조물로, 그의 사랑과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비추어짐을 상징합니다.
누구든지 그 사랑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5. 맺으며
오늘 야외예배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자연 속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배입니다.
하늘의 침묵 속 설교를 들으며, 공동체로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후 식사와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공동체성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적용질문]

  1. 자연을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일상 속에서 하늘, 바람, 햇살 같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인식한 경험이 있다면 나눠보세요.

  2. 나는 '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해 자주 묵상합니까?
    신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창조의 목적과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3. 자연 속 예배가 내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건물 안의 예배와 자연 속 예배는 무엇이 다르게 느껴졌는지, 그 차이가 내 예배 태도에 어떤 의미를 줍니까?

  4. 내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소리 없이' 전하고 있습니까?
    하늘처럼 말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기 위해, 나는 어떤 삶의 태도를 실천하고 있습니까?

  5. 과학과 신앙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까?
    신앙인으로서 과학적 사실과 신앙 사이에서 긴장이 생길 때,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합니까?

  6.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을 나는 어떻게 경험하고 나누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해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비추는 사랑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2025/06/21

듣고자 하는 이에게 대답을 (사도행전 13장 6~12절_20250622)





1.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 개인의 삶과 운명을 예측하거나, 내면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안 속에 살아가며 사주나 점술에 관심을 두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런 불안의 뿌리를 ‘죄’에서 찾습니다. 죄는 단순한 나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기오 바울 총독도 바로 이런 갈증을 느끼고 있던 인물입니다.

2. 듣고자 하는 자와 듣기를 거절하는 자
서기오 바울은 키프로스 섬의 총독으로, 권력과 부유함을 모두 갖춘 로마의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의 갈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반면, 바예수라는 인물도 등장하는데요, 그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이며 마술사였습니다. 총독의 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는,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말씀을 대적하며 총독이 믿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바예수는 진짜 복음을 알아보았지만, 그 자리에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끝내 거절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게 됩니다. 혹시 우리 마음속에도 진리를 알면서도 따르지 않으려는 모습은 없는지요?

3. 듣고자 하는 이에게 대답하는 태도
만약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신앙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드로전서 3장 15~16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1) 온유함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하게 대하며, 예의 있는 태도로 대답해야 합니다.
    2) 두려움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말해야 합니다.
    3) 선한 양심으로: 진실하게, 아는 만큼만 정직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간혹 모르는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솔직하게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 볼 문제네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성을 보여주는 좋은 태도입니다.

4. 대답하는 두 가지 방법: 간증과 전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은 **간증(Testimony)**과 **전도(Evangelism)**입니다.

간증은 예수님을 만나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솔직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꼭 대단하거나 극적인 이야기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 삶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간증의 핵심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지, 내 성공담이나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도는 복음의 핵심 내용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세상과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2)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며, 이것이 죄입니다.
    3)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4)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5. 나오며
우리는 AI 시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전쟁, 경제 불안 같은 현실을 보며 많은 이들이 근심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만족과 소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보며 누군가 “무엇이 그렇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그들에게 온유하고 정직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대답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전할 준비를 갖춘 복된 주님의 사람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질문]

1. 나의 갈증은 무엇인가요?
나는 무엇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나요? 그 불안의 근원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2. 서기오 바울처럼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요?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듣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까?
혹시 바예수처럼 진리를 알고도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3. 누군가가 내게 “왜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내 삶 속에서 복음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간단하게 말해볼 수 있을까요?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도록 정리해 본 적이 있나요?

4. 나는 온유와 두려움, 선한 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나요?
말투나 태도, 동기에서 복음을 전할 때 겸손과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하고 있나요?
혹시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교만이나, 상대를 판단하는 태도가 무심코 드러난 적은 없었는지요?

5. 내가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나요?
하나님, 인간의 죄, 예수님의 십자가, 믿음을 통한 구원 — 이 네 가지를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지점검해 보세요.

6. 나의 간증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가요,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가요?
내 간증이 다른 사람에게 “나도 예수님을 알고 싶다”는 마음을 줄 수 있는 내용인가요?
혹시 간증의 초점이 하나님의 은혜보다 내 성취나 감정에 머물러 있지는 않나요?



2025/06/07

성령충만 (사도행전 2장 1~4절_20250608)




1. 들어가며: 성령강림절 의미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생일’과 같다.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공동체에 임하심으로 교회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순절은 유대인의 절기 중 하나인 맥추절과 관련되며, 한 해의 절반을 지나 감사드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2. 성령 세례 vs 성령 충만
성령 세례는 단회적 사건: 구원의 순간, 성령께서 임하시는 결정적인 인생 변화.
성령 충만은 지속적인 삶의 태도: 매일 성령과 동행하며 말씀 따라 사는 삶.
마치 **결혼식(성령 세례)**과 **결혼생활(성령 충만)**의 차이와 같다.

3. 성령 세례의 체험
체험은 사람마다 다름: 어떤 이는 불같이, 어떤 이는 고요하게 경험.
외적 체험의 강도보다 삶의 변화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이 진짜 증거.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느니라”

4.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
성령 충만은 신비한 체험보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삶.
요 16:13: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시고, 장래의 소망을 주신다.
진리 되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 마음에 임하시고 인도하신다.

5. 나오며
성령강림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완성이다.
성령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삶 속에 임하신 분이다.
오늘도 말씀과 함께 진리의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


[적용질문]
1. 나는 성령 세례를 받았는가?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있는가?
내 삶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변화가 일어났던 순간이 있었는가?

2.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최근 나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했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인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아니면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3.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나에게 어떤 진리를 가르쳐 주셨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있는가, 아니면 신비한 체험만을 추구하고 있는가?

4. 나의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자라고 있는가?
나는 성령이 임하신 공동체(교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교회를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공동체로 여기고 있는가?

5.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요즘 내 마음을 두드리시는 성령님의 음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음성에 순종하거나 외면한 적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