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9

손 내미시는 하나님 (마가복음 1장 40~45절_20251130)

Christ Healing a Leper — Rembrandt van Rijn




1. 들어가며
   -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함께 드리는 연합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상징합니다.
   - 어려운 시대 속에서 감사로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 나병환자의 고백처럼,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2. 고통보다 더 큰 고립
    - 나병은 신체의 고통보다 사회적 고립이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 그는 공동체에서 철저히 분리된 자였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 예수님의 행위는 율법의 한계를 넘어선 긍휼의 행동이며, 단순한 치유 그 이상이었습니다.


3. 예수님의 손길 ― 규례를 넘고, 위험을 넘은 사랑
    - 예수님의 손길은 창조주의 손길이며, 성육신적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 이는 단순한 기적이 아닌, 죄로 병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대속적 사랑의 예표입니다.
    -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자기 죄를 깨달았듯, 우리 역시 회개와 겸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4. 성육신이 부르는 삶 ― 위험을 감수하는 긍휼의 사랑
    - 예수님의 사랑은 거리두기나 회피가 아닌, 위험을 감수하며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사랑입니다.
    - 우리는 그 사랑을 경험한 자로서, 세상의 경계선을 넘어 고통받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 주님의 손길은 여전히 사람을 살립니다. 이제 우리를 통해 그 손길이 전해져야 합니다.


5. 나오며
    - 우리는 영적 나병 환자와 같았으나, 주님의 손길로 치유받고 회복된 자들입니다.
    - 그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 세상 속에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적용 질문[

- 나는 기도할 때,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있는가?
→ 내 기도의 시작점은 감사와 신뢰에 기반하고 있는가?

- 나도 모르게 내 삶에 누군가를 ‘부정한 자’로 낙인찍고 거리두고 있지는 않은가?

- 주변에 고립되어 있거나 격리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그들에게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예수님처럼, 나도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적이 있는가?

- 나는 지금까지 주님의 긍휼의 손길을 어떻게 경험했는가? 그것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

- 이번 주간, 나병환자처럼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 한 명을 위해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2025/11/21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인생 (창세기 40장 20~23절_20251123)

https://www.meisterdrucke.uk/fine-art-prints/Unbekannt-Unbekannt/653037/Joseph-Interprets-the-Dreams-of-Two-Prisoners-%28Genesis-40%29.html?utm_source=chatgpt.com



1. 들어가며
    - 우리도 요셉처럼 기도에 응답이 없고 고난이 지속될 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 의심할 수 있음.
    - 요셉은 억울한 노예 생활, 감옥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억된 자였음.

2. 불안과 침묵 속에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 감옥의 요셉은 보디발의 신뢰를 계속 받았고, 관원들을 섬기게 됨.
    - 요셉의 감옥 생활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훈련 과정이었음.
    - 하나님은 요셉을 이집트 상류 문화와 정치 속으로 훈련시키고 계셨음.

3. 잊힘의 시간은 하나님의 훈련 시간이다
    - 요셉은 관원들의 꿈을 해석하며 신앙의 용기를 보여줌.
    - 해석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실을 전함.
    - 관원장의 잊음은 인간 본성의 거울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를 더 신뢰하게 만드는 기회가 됨.

4. 기다림 속 순종이 내일의 부활을 연다
    -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으나, 하나님은 결코 요셉을 잊지 않으심.
    - 기다림과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
    - 사람의 망각은 우리의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라는 요청임.

5. 나오며: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기억
    -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신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예수님의 십자가.
    - 예수님조차 버림받은 것 같은 순간에, 하나님은 인류를 위한 구원을 완성하심.
    - 요셉처럼 잊힘의 시간, 침묵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기억은 멈추지 않음.
    - 우리의 소망은 사람의 기억이 아닌, 하나님께 있는 기억 속에 있음.


    [적용문제]
   
    - 최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저를 기억하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던 상황은 무엇이었나요?

    -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원망, 포기, 혹은 신뢰 중 어느 쪽이었나요?

    - 사람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한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 기억되지 않는 시간(잊힘의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훈련하고 계셨다고 느끼시나요?

    -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내가 있다는 확신이 내 일상에 어떤 용기와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2025/11/17

인사말 (제12회 자선음악회)



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liebe Musikfreunde, herzlich willkommen zu unserem Benefizkonzert! 

Zum zwölften Mal gestalten der Chor, die Solisten und die Musiker der Open-Door Church diesen besonderen Abend. Auch in diesem Jahr erwarten Sie ausgewählte Chorwerke, ausdrucksstarke Gesangsstücke und berührende musikalische Beiträge. Unser Wunsch ist es, dass die Klänge unserer Musiker Sie erfreuen und Ihnen einen unvergesslichen Abend schenken.

Mit Ihren Spenden unterstützen Sie in diesem Jahr unsere Missionsarbeit in Kenia sowie die Hamburger Tafel e. V., die sich für Menschen in herausfordernden Lebenssituationen einsetzt. Dieses Konzert steht im Zeichen der Liebe Gottes und der Nächstenliebe – möge es nicht nur ein musikalisches Erlebnis sein, sondern auch eine Einladung, Hoffnung und Fürsorge miteinander zu teilen.

Su Bin Lim,
Pastor der Ev. Kor. Open Door Gemeinde


2025/10/31

하나님의 질서 (창세기 39장 6~23절_20251109)


Joseph in Prison / Gerbrand van den Eeckhout (1621-1674)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질서
    - 주기도문 “나라가 임하옵시며”의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세상 질서의 차이
    - 요셉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질서가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2. 형통은 유혹을 이길 때 드러난다
    -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행사한 권력적 유혹 앞에서도 하나님의 질서를 따름
    - 이는 단순한 도덕적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며 사는 삶”의 선언이며,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


3.  형통은 억울한 실패 속에서도 진행된다
    -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지만 요셉은 오히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힘
    - 그러나 그의 정직과 믿음은 하나님의 질서를 붙드는 행동이었고, 하나님은 그를 감옥에서도 떠나지 않으심


4. 형통은 하나님과 함께할 때 완성된다
    - 요셉은 감옥에서도 형통합니다. 그 이유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
    -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결국 요셉을 총리로 세우는 연결고리가 되며,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었음을 보여줌


5. 나오며- 고난은 연결고리
    - 요셉의 인생은 “누구의 질서 아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반복된 응답
    -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질서를 선택한 결과, 하나님은 요셉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선포하심


[적용 질문]

나는 지금 어떤 질서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질서입니까, 세상의 질서입니까?

- 내가 이해하고 있는 형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형통이라 믿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기 위해 최근에 감수한 손해나 불편함이 있었습니까? 그때 내 마음은 어땠습니까?
 
-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나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연결고리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고백을 내 **개인 삶의 영역(가정, 직장, 공동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실천적 적용] - 한 주간 실천할 수 있는 실제 행동 지침

- 주기도문을 한 구절씩 묵상하며 기도해보기! 특히 “나라가 임하옵시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질서를 내 삶에 초대해 보기

- 이번 주에는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기로 결단할 한 가지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해보기

- 고난이나 억울한 상황 속에서 감사 제목을 3가지 적어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기

- 셀모임 시간에, “하나님의 질서를 따른 삶이 실제로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까?”를 주제로 서로 나눠보기

- 감옥 속에서도 요셉이 형통했다는 진리를 기억하기, 환경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바라보는 훈련해 보기




2025/10/30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 (창세기 39장 1~6절_20251102)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미국 뉴욕) 소장품

 


요셉의 이야기 속 형통
    -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17세에 이집트 노예로 팔려갔지만, 성경은 그를 형통한 자라고 말합니다.
    - 그 이유는 단 하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 39:2)

성경이 말하는 형통이란?
    - 형통은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나옵니다.
    -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보디발조차 요셉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앙 정체성과 삶의 간증
    - 요셉은 삶으로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 유창한 언변이 아닌 성실과 정직으로 보디발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 신앙의 뿌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 야곱이 전해준 하나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형통의 열매는 ‘이웃을 이롭게 하는 삶’
    -하나님은 요셉 한 사람을 통해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창 39:5)
    - 참된 형통은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적용문제]

개인적인 묵상을 위한 질문
    - 내 삶에 하나님의 동행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 환경이 좋지 않을 때에도 형통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적이 있었나요?

다음 세대와 관련된 질문
    - 요셉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 속에 있는 우리 자녀(또는 후배)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어떻게 전하고 있나요?

삶의 적용을 위한 질문
    - 나의 신앙은 말보다 삶으로 드러나고 있나요?
    - 나로 인해 복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누구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2025/10/23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열심 (창세기 38장 1~30절_20251026)

By Francesco Hayez - deartibus.it,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25947239


1. 들어가며
창세기 38장은 우리가 읽기 불편해하는 본문 중 하나입니다. 유다와 다말의 사건은 도덕적으로 충격적이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놀라운 복음의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열심, 즉 인간의 타락 속에서도 중단되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 인간의 죄는 부끄럽고 반복되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그 죄 너머를 본다 (1~11절)
    - 유다는 아버지 야곱과의 갈등, 요셉 사건 이후 공동체를 떠납니다.
    - 그 결과,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고 아들들을 낳지만, 두 아들이 연달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습니다.
    -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음으로 약속을 저버리고, 다말은 소외된 채 버려집니다.
    - 우리는 때때로 유다처럼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며 죄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구원 계획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3. 하나님은 인간의 모순과 위선 속에서도 구원의 통로를 여신다 (2–26절)
    - 유다는 다말을 외면하고 욕망에 따라 타락한 행동을 하며 며느리를 창녀로 착각합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다말의 간절함을 통해 약속의 계보를 이어가게 하십니다.
    - 유다는 “그녀가 나보다 옳도다”라고 고백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됩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나 수치스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는 자를 사용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혼란보다 깊고, 인간의 궤변보다 강합니다.

4. 하나님의 열심은 인간의 족보를 꿰뚫어 구원의 새 길을 여신다 (27–30절, 마1:1–3 / 사 9:7)
    - 베레스와 세라의 탄생 장면은 인간의 질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 베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되고,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실패한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진행된다는 확증입니다.
    - 이사야 9:7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선언합니다.
    - 우리의 연약함, 실패, 수치 속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 때문입니다.

5. 나오며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무너진 자리에서, 실패한 인생에서, 고개 숙인 자들에게 “나는 일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의 삶을 향해 타오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과 회개로 응답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다시 구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실 것입니다.



말씀 나눔 – 본문과 메시지 되새김
    - 유다가 가족과 공동체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고, 그 결정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 여러분의 삶에도 회피하고 싶은 관계나 책임이 있었던 적이 있나요?

    - 다말의 행동은 시대적으로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행동했을까요?
    - 다말의 선택에서 ‘믿음’과 ‘결단’이라는 측면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 유다가 “그녀가 나보다 옳도다”라고 고백한 장면에서 무엇이 느껴지셨나요?
    - 나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한 경험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삶이 적용 – 나의 현실과 연결
    - 혹시 최근 여러분의 삶에서 회피하고 싶었던 죄책감, 수치, 과거의 실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심하거나 주저한 적은 없었나요?

    - 하나님의 **‘열심’**에 대해 오늘 새롭게 깨달은 점은 무엇인가요?
    -그 열심이 여러분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 내가 자주 정죄하거나 판단했던 사람 혹은 상황이 있었나요?
    -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시선을 어떻게 바꾸고 싶으신가요?


2025/10/19

하나님의 꿈 (창세기 37장 12~36절_20251019)

Johann Friedrich Overbeck – Joseph Sold by his Brothers 1817. 243x304
Old and New National Galleries, Museum Berggruen (Alte und Neue Nationalgalerie, Museum Berggruen), Berlin.


1. 들어가며
    요셉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꿈과 섭리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2. 하나님의 꿈에 대해 무지한 자: 야곱과 요셉
    야곱은 무지함으로 가족 간 갈등을 키웠다.
    요셉은 형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하고 철없이 행동했다.
    사랑의 부재와 무관심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신앙은 단지 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꿈에 대항하는 자: 요셉의 형들
    형들은 하나님의 꿈을 막기 위해 요셉을 제거하려 했다.
    질투는 빠르게 미움과 폭력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죄로도 꺾이지 않는다.

4. 버림받은 자리에서도 진행되는 하나님의 꿈: 요셉
    구덩이 속 요셉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 뜻을 이루신다.
    요셉의 낮아짐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과정이었다.
    구덩이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5. 나오며
    하나님의 꿈은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가, 방해하는가?
    구덩이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라.


[적용문제]

1. 나는 하나님의 꿈을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인생의 방향은 나의 꿈인가, 하나님의 꿈인가요?


2.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구덩이’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 누군가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 무관심, 시기, 혹은 비교의 태도를 돌아보십시오.


3. 나는 지금 어떤 ‘구덩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나요?
    - 그 자리에서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4.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이나 낮아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 그 고난을 통해 나를 연단하고 계신 하나님을 보고 계신가요?


5 이번 한 주, 하나님의 꿈을 따라 살기 위해 내가 결단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인가요?
    - 누군가의 샬롬(평안)을 돌보는 작은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2025/10/09

요셉의 하나님 (창세기 37장 1~11절_20251012)

https://de.chabad.org/parshah/article_cdo/aid/606453/jewish/Josefs-Trume.htm


1. 들어가며
    - 요셉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요셉의 하나님’, 즉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조명함. 
    - 요셉의 삶은 우리가 신앙 여정에서 겪는 하나님의 침묵과 섭리를 잘 보여준다.

2. 요셉의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창 37:1–4)
    - 요셉은 철없는 열일곱 소년이었고, 야곱의 편애로 인해 가족 간 갈등을 겪음.
    - 요셉의 복잡한 가정과 미숙함조차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준비의 도구가 되었음.
    - 우리의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섭리로 일하심.

3. 요셉의 하나님은 꿈을 통해 미래를 약속하시는 하나님 (창 37:5–9)
    - 요셉은 두 번의 꿈을 통해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받았지만, 미성숙한 태도로 형들의 미움을 삼.
    - 꿈은 단순한 자랑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였으며, 요셉은 그 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임.
    -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꿈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요셉은, 꿈을 통해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신함.

4. 요셉의 하나님은 기다림 속에서 우리를 빚으시는 하나님
    - 요셉은 꿈을 받은 후 13년 동안 노예와 죄수의 삶을 살아야 했음.
    - 애굽에서 그는 신앙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없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만으로 신앙을 지킴.
    - 요셉은 꿈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했으며,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붙듦.
    - 하나님은 꿈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꿈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연단하시는 분이심.

5. 나오며: 꿈보다 하나님
    - 요셉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평범한 삶, 보이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 고난과 불편함 속에서도 신실하게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
    - 신앙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반응하는 것이며, 요셉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임을 믿고 살아가야 함.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요셉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일하시며,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



[나눔]

관찰(Observation)
    - 창 37:4에서 형들이 “샬롬” 인사도 못 할 정도로 미워했다는 사실이 상상이 되는지? 그런 경험을 있는지?

해석(Interpretation):
    - 하나님이  기다림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성품·인격·사명 준비 관점)
    - “신앙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에 반응한다”는 말의 의미를 요셉의 사례로 설명해 보세요.

[적용]
    – 개인(Life)
        지금 내 삶에서 ‘불완전해서 숨기고 싶은 조각’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준비의 재료로 사용하시도록 어떤 순종을 시작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나 비전이 더디 보일 때, 내가 흔히 보이는 반응은 무엇입니까? 
        (비교·낙심·조급함 등) 그것을 믿음의 습관으로 어떻게 바꾸겠습니다?
        이번 주 기다림의 영성훈련을 위해, 하루 10분 ‘말씀–침묵–짧은 기도’를 실천해 보겠습니까?

    – 관계/가정(Community)
        가정/셀에서 하나님의 손길 이야기(간증) 한 가지씩 나누어 보세요. 
        서로의 기다림을 위해 어떤 구체적 중보기도를 하겠습니까?
        공동체 안에서 ‘요셉의 형들’처럼 시기 / 비교의 마음이 올라올 때, 어떤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 사역/세상(Mission)
        직장(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표현으로 한 가지 행동을 결심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2025/10/03

야곱의 길과 에서의 길: 약속 위에 세워진 교회 (창세기 36장 1~8절_20251005)

Encampment in the desert, with Mount Seir in the distance.
Coloured lithograph by Louis Haghe after David Roberts, 1849.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길만이 진정한 생명의 길이며, 교회는 인간의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져야 한다."

1. 들어가며
창세기 36장의 에서 족보는 단순한 이름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 없는 번영의 허무함과 믿음의 길을 분명히 대비시켜 줍니다. 특별히 교회 설립기념주일에, 공동체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고민합니다.

2. 야곱의 길
인간적인 수단으로 인생을 개척하려 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문제를 맡겼을 때 회복과 자유를 경험합니다.
▶ 믿음이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결단’입니다.

3. 에서의 길
외적인 번영과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믿음과 결별한 삶을 보여줍니다.
▶ 하나님 없는 성공은 본질적으로 공허합니다.

4. 교회의 길
교회는 인간의 능력이나 조건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 겉모양보다 ‘믿음과 순종’이 교회의 진정한 기반입니다.

5. 나오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약속을 붙드는 믿음의 공동체’로 살아갈 것을 고백하고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적용 문제]

1. 말씀 반추
    - 야곱과 에서의 삶을 통해 믿음과 믿음 없는 선택의 차이는 무엇이었습니까?
    - 창세기 36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까?

2. 자기 성찰
    - 나는 어떤 결정을 할 때 ‘하나님의 약속’보다 ‘조건과 형편’을 먼저 따지는 경향이 있나요? 
      최근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나누어 보세요.
    - 내 삶에서 반복되는 “자기, 자기,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나요?

3. 공동체 성찰
    - 우리 교회(또는 소그룹)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사람의 능력과 조건을 더 중요시하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공동체의 모습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4. 결단과 실천
    - 이번 주 나는 어떤 믿음의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예: 인간적인 방법 내려놓기, 말씀 앞에 순종하기,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기 등)
    - “교회는 인간의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진다”는 고백을 실제로 살아내기 위해, 
       내가 맡은 사역이나 봉사에서 바뀌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시편49편 20절 - 월간목회 2025년 10월호)

 







2025/09/25

하나님의 시간 (창세기 35장 1~15절_20250928)

Jacob at Bethel by James Smetham (1821-1889).
Oil on panel. H 11.3 x W 30.1 cm. Birmingham Museums Trust.


1. 하나님의 시간은 다시 부르시는 은혜로 시작됩니다 (1~5절)
    - 위기에 빠진 야곱에게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 이는 예배로의 초대, 과거를 새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 하나님은 완벽한 자가 아닌, 답 없는 자를 부르십니다.


2. 하나님의 시간은 과거를 정돈하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자리입니다 (6~10절)
    - 야곱은 “벧엘”에서 “엘벧엘(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 장소 중심 신앙에서 관계 중심의 신앙으로 성장합니다.
    - 예배는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 정체성을 회복하는 자리입니다.

3. 하나님의 시간은 새로운 소명을 따라 걸어가는 출발점입니다 (11~15절)
    -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 이는 과거의 야곱을 마감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의 완전한 전환입니다.
    - 우리도 예배 속에서 소명과 방향을 회복해야 합니다.



Ice-breaking
    - 요즘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분주함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나요?
    - 설교 중에 야곱의 모습에서 나와 가장 닮았다고 느낀 점은 무엇이었나요?

본문 적용 (본격적 나눔)
    -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로 다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다시 부르고 계신 '벧엘'은 어떤 자리일까요? 
        (예: 예배, 기도, 회개, 가정, 공동체 등)
    - 나의 삶에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과거나 내려놓지 못한 우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야곱이 “엘벧엘”이라 부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고백했듯이, 
        나의 신앙은 지금 ‘장소 중심’인가요, ‘관계 중심’인가요?
    -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롭게 주시길 원하시는 이름, 
        또는 회복시키시려는 정체성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삶의 적용 (결단과 기도)
    - 오늘부터 하나님의 시간을 내 삶 가운데 실천하려면 어떤 결단이 필요할까요?
        (예: 하루 10분 말씀 묵상, 기도의 자리 회복 등)


2025/09/18

천로역정 (창세기 34장 1~10절_20250921)


‘텬로력뎡’ 삽도, 기산 김준근


1. 제자리 신앙이 불러온 비극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도달했지만,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선택은 그의 가정에 큰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으며, 세상의 물질적 풍요를 좇은 결과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의 화해 후,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했지만, 세겜에서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신앙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 세상의 방법 - 돈으로 죄를 덮으려 한다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은 디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돈과 결혼을 제시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의 방식은 물질과 힘으로 문제를 덮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를 회개하고 해결할 때에만 진정한 해답을 주십니다.


3. 종교적 열정이 분노로 타락할 때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의 수치를 복수하려고 세겜 성의 남자들을 학살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신앙적 열정이라기보다는 감정적 분노에 의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의로움을 주장한 결과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신앙적 열정이 감정적 반응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4.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신 듯 보이지만, 창세기 34장의 사건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과 분노가 일어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며, 결국 그분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적용 문제]
1. 제자리 신앙: 야곱이 세겜에 머무르며 선택한 삶이 그와 그의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고, 현재 여러분이 선택하고 있는 삶의 방향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점검해 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물질적 풍요를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나요?


2. 세상의 방법: 세상에서 주는 물질적 해결책을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나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3. 신앙적 열정의 왜곡: 시므온과 레위처럼, 우리의 신앙적 열정이 때때로 감정이나 분노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을까요? 우리의 감정적 반응을 신앙의 열정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4.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창세기 34장에서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그분의 뜻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하고 따를 수 있을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세요.


유혹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우리가 신앙의 여정에서 만나는 유혹과 갈등을 하나님께 어떻게 의지하며 넘을 수 있을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를 수 있을지 다짐해보세요.

2025/09/11

브니엘의 축복– 하나님 얼굴을 본 자 (창세기 33장 1~10절_20250914)

By James Tissot - http://www.thejewishmuseum.org/collection/26303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862730



1. 브니엘의 뜻과 야곱의 변화
    -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며,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 후 그곳에 붙인 이름이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며 자신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복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존재를 바꾸는 복, 곧 이름의 변화(야곱 → 이스라엘)를 주셨다.
    브니엘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으나 살았다"고 고백한다.

2. 브니엘의 축복은 존재의 변화
    
브니엘의 축복은 상황의 변화가 아닌 존재의 변화이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브니엘의 복이다.
    야곱은 여전히 두려워하면서도 형 에서를 향해 나아가며 앞장서서 책임지는 자로 변화되었다.

3.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로서의 관계 변화
    
야곱은 에서를 만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본 것처럼 고백한다: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 33:10)”
    
하나님과 화해한 자만이 사람과도 화해할 수 있다.

4.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의 삶의 방향
    
야곱은 형 에서와 함께 하지 않고, 하나님이 명하신 가나안 땅으로 나아간다.
    브니엘의 복을 받은 사람은 ‘더 안전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길’을 선택한다.


[적용 문제]
1. 나는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이 주시기를 바라는 복은 어떤 것이었나요?
    물질입니까, 안전입니까, 아니면 존재의 변화입니까?

2.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으로, 내 삶의 태도나 관계 속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내가 여전히 두려워하고 피하고 있는 ‘에서의 얼굴’은 누구(무엇 또는 어떤 상황)입니까?

3. 하나님을 만난 후에도 내가 여전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현재 내 인생의 선택 기준은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내가 보기엔 안전해 보이는 길입니까?

4.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5. “브니엘의 축복”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존재의 변화라면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6. 야곱처럼 두려움을 안고도 한 걸음을 내딛어야 했던 순간이 있었는가?
    그때 하나님은 나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7. 하나님을 만나고도 여전히 인간적인 조치를 취한 야곱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내 삶 속에서 믿음과 인간적인 계산 사이의 갈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8. 인생의 여러 선택 앞에서, 어떤 기준으로 방향을 정하고 있는지


2025/09/05

내가 구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 (창세기 32장 24~29절_20250907)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by Rembrandt van Rijn



1. 들어가며
인간이 구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다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크고 선한 것을 준비하신다.

2. 야곱의 삶과 복의 오해
야곱은 장자권과 축복을 속임수로 빼앗았고, 외삼촌 라반 집에서 20년간 복을 얻기 위해 수고.
겉으로는 많은 복을 누린 것 같지만, 내면에는 형을 향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다.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 속에서 살았다.

3. 얍복강 사건: 복을 구하는 씨름
에서와의 재회 앞에서 야곱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드림.
한 사람(천사)과 씨름하며 복을 구함.
결국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서야, 그는 하나님께 매달림.

4. 야곱이 받은 진짜 복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 이름 ‘이스라엘’**을 주심.
더 이상 속임으로 얻는 복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새로운 정체성이 복이 되었음.
야곱이 구한 복(물질, 권세)은 사라졌고, 내면의 회복과 신앙의 변화가 진정한 복으로 주어짐.
마가복음 9장의 말씀처럼, 지체 하나를 잃더라도 영생을 얻는 것이 더 큰 복임을 상기시킴.

5. 나오며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복보다 더 크고 깊은 복을 원하신다.
자녀들의 인생 전환점에서 성공보다 변화된 인격과 믿음을 소망해야 함.
우리도 날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이 땅의 복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복을 구해야 함.


[적용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복을 가장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까?
    -그 복은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2. 야곱처럼 내 힘으로 복을 얻으려 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의 결과는 어땠고, 내 마음은 어땠는지 돌아봅시다.


3.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정체성을 바꾸셨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 그 사건이 나에게 어떤 변화와 깨달음을 주었나요?


4. 자녀나 가족, 혹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복을 구하고 있나요?
    -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더 깊은 복을 주길 원하신다고 믿습니까?


5. 오늘 나는 어떤 ‘절름발이’의 모습(예: 나의 부족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 그 상처 속에서 어떤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2025/08/30

막다른 길에서 만나는 은혜 (사도행전 16장 6~10절_20250831)

출처: bibliakorea.com



1. 막힌 길에서도 은혜가 있다
    - 신앙의 길은 고난이 없는 길이 아님.
    - 사도 바울도 복음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했지만, 여러 번 길이 막힘을 경험함.
    - 그러나 눈에 보이는 길은 막혀도 하늘 문은 열려 있고, 기도할 수 있는 은혜가 있음.

2.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다 (행 16:6~7)
    - 바울은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가려 했으나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심.
    - 기도 가운데 “거절”도 응답임을 깨달아야 함.
    -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크고, 결국 바울을 마게도냐로 인도하심.
    - 신앙은 내 욕심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며 동행하는 삶.

3. 하나님은 막힌 길을 통해 끝까지 인도하신다 (행 16:8~10)
    - 바울이 고집을 부렸음에도 환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심.
    - 모세처럼 두려움과 거절로 버티는 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심.
    - 막힘은 실패가 아니라 방향 전환의 신호.

4. 막힌 길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시작점이다
    -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한 관객이 아닌, 복음을 이루는 동역자로 초대하심.
    -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역사하심.
    - 막힘은 새로운 무대를 여는 하나님의 초대장.

5. 나오며
    -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다.
    -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인도하신다.
    -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반드시 일하신다.
    - 막힘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더 크고 선한 뜻을 기대하며 순종해야 한다.

[적용 문제]
    - 나는 신앙생활 속에서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 낙심하고 원망하는가, 아니면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가?

    - 내 기도는 “내 소원을 말하는 시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는 태도가 있는가?

    - 지금 내 삶에서 막힌 길처럼 느껴지는 상황은 무엇인가?
    - 그것을 장애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새로운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 바울이 경험한 것처럼 “거절도 응답”임을 믿는가?
    - 하나님께서 더 큰 계획을 위해 내 길을 막으셨음을 인정할 수 있는가?

    - 하나님은 나를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동역자로 부르신다.
    -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2025/08/15

쓰임 받는 자의 조건 (사도행전 16장 1~3절_20250817)


Joachim Schäfer/ www.heiligenlexikon.de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

    - 세상은 능력·스펙·평판을 보고 사람을 선택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함과 부족함까지도 사용하신다.
    - 고전 1:27 –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 약한 것을 택하신다.


2. 바울 – 부끄러운 과거를 쓰신 하나님
    - 바울은 과거에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 그러나 하나님은 그 경험을 사용해, 유대인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 부끄러운 과거조차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사역의 자산이 될 수 있다.


3. 디모데 – 약점을 쓰신 하나님
    -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율법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인물이었다.
    - 그러나 이 문화적 배경이 복음이 유대와 이방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했다.    
    - 하나님은 약점을 쓰셔서 복음 확장의 도구로 삼으신다.


4. 바울과 디모데의 공통점
    - 완벽한 조건이 없었지만,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 사역의 능력은 사람의 기술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서 온다(고전 2:4~5).


5. 나오며
    -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리란 특별한 곳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삶의 자리이다.
    - 연약함, 실패, 부끄러운 과거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 한 주간 나의 약점을 적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믿음으로 살자.


[적용 질문]
1. 나의 과거와 약점
    - 내가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나 약점은 무엇입니까?
    - 그것이 하나님 손에 들려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2. 하나님 시각으로 보기
    - 나는 여전히 세상의 기준(능력, 스펙, 배경)으로 사람과 나 자신을 평가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내 삶의 어떤 부분이 강점이 될 수 있을까요?

3. 나의 현재 자리
    - 지금 내가 서 있는 가정, 직장, 공동체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 이번 주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4. 연약함 속의 능력 경험
    - 최근에 나의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순간이 있었습니까?
    - 그 경험을 기억하며 다음 사역이나 관계 속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5. 다짐하기
    - 이번 주 나의 약점과 과거를 적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올려드리겠습니다.
    -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의 변화가 나타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025/08/08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사도행전 15장 36–41절_20250810)




Bartholomeus Breenbergh (Dutch, 1598–1657), Saints Paul and Barnabas at Lystra (Sacrifice at Lystra), 1637. Oil on wood panel; 69.5 × 92 cm, 89.9 × 112.7 × 6.3 cm (frame). Museum purchase, Fowler McCormick, Class of 1921, Fund (2006-46)
Bartholomeus Breenbergh (Dutch, 1598–1657), Saints Paul and Barnabas at Lystra (Sacrifice at Lystra), 1637.
Oil on wood panel; 69.5 × 92 cm, 89.9 × 112.7 × 6.3 cm (frame).
Museum purchase, Fowler McCormick, Class of 1921, Fund (2006-46)


들어가며

- 사람마다 선택과 판단 기준이 다르지만, 그 다름이 곧 잘못은 아니다.
- 신앙생활과 삶의 태도도 다양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성향과 은혜 때문이다.
- 우리는 다름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행 15장)
- 예루살렘 회의에서 구원의 본질(율법이 아닌 은혜)을 재확인.
- 2차 선교여행 준비 중, 마가를 데려가자는 바나바와 반대하는 바울 사이의 의견 차이로 갈라섬.
- 성경은 누가 옳았는지 판단하지 않고, 각자 다른 길로 사역했음을 기록.
- 헬라어 ‘다툼’(파록시스모스)은 ‘격려’라는 의미도 있어, 결별이 파국이 아니라 사명의 분리였음을 시사.


갈라섰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확장됨
- 바울과 실라는 발칸 반도와 로마로 복음을 확장.
- 바나바는 마가를 세워 훗날 복음 사역에 유익한 일꾼으로 만듦.
- 다름이 복음의 지경을 넓히는 계기가 됨.


각자의 부르심
- 바울: 대중 전도와 이방인의 사도.
- 바나바: 사람을 세우는 사역.
- 바나바는 초기 바울을 공동체 안에 주었고, 마가 역시 세워 마가복음 기록자로 준비시킴.
- 바울 서신 13권과 마가복음을 통한 복음 확장 배후에는 바나바의 헌신이 있었다.


나오며
- 하나님은 다름을 통해 뜻을 이루신다.
- 우리가 받는 상은 ‘무슨 일을 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순종했는가’에 달려 있다.
- 이번 주,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보내신 동역자로 보자.
- 다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삶을 살자.



[적용 문제]
1. 나는 일상생활에서 나와 다른 의견이나 방식을 가진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판단한 경험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 경험을 떠올리고 당시 나의 마음가짐을 돌아봅시다.


2. 내가 속한 공동체(가정, 직장, 교회) 안에서 바울과 바나바처럼 의견 충돌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다면, 그 갈등을 통해 어떤 선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3. 바울과 바나바는 헤어진 후에도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지금 내 삶에서 관계가 멀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를 비난하기보다 그의 강점과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4. 나는 바울처럼 주목받는 사역을 선호합니까, 아니면 바나바처럼 한 사람을 세우고 섬기는 사역에 더 마음이 끌립니까? 각자의 부르심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받은 부르심에 감사하며 충성하기 위해 노력할 부분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025/08/01

차별이 아닌 구별 (사도행전 14장 28절~ 15장 5절_20250803)



1. 들어가며 – 구별과 차별은 다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하는 ‘구별’의 표지였지, 차별의 도구가 아님.
본문 상황: 예루살렘에서 온 자들이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주장함으로 교회 안에 분열이 생김.
하나님은 구별하셨지만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차별은 사라져야 합니다.

2. 구원은 은혜이지 자격이 아닙니다 (행 15:1-21)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 선교 보고를 하며,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믿음의 문을 여셨다고 간증.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은 "할례 없이는 구원 없다"고 주장 → 논쟁 발생.
베드로는 고넬료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셨다"고 고백.
야고보는 성경(아모스 9장)을 인용하여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
구원은 율법이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다.

3. 절제는 성숙의 표지, 타인을 위한 사랑입니다
사도들은 이방인에게 네 가지를 금함 (우상의 더러운 것, 피, 목매어 죽인 것, 음행) →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별의 표시’.
고대 시장 고기 대부분은 우상 제물 → 우상숭배와 연결됨.
바울은 음행은 강하게 금하되, 음식 문제는 ‘믿음이 연약한 자에 대한 배려’로 접근 (롬 14장).
자유함도 사랑으로 절제하라. 이것이 성숙한 신앙이다.

4. 구별된 삶은 정체성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아래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함.
오늘날의 ‘우상의 더러운 것’은 돈, 지위, 명예일 수 있음. 이들이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 때 우상이 됨.
신자는 세상과 구별되되, 정죄하지 않고 사랑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5. 나오며 – 차별이 아닌 구별로 사랑을 실천합시다
갈라디아서 3:28 인용: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셨지만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구별된 정체성을 따라 사랑과 절제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는 차별 대신 구별된 삶을 선택합시다. 사랑으로, 절제로, 정체성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

[적용질문]

1. 하나님은 우리를 ‘구별’하셨지,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우월하게 여긴 경험이 있었나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
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나이, 문화, 스타일, 신앙 깊이 등)

2. 구원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 혹시 나는 누군가의 신앙 수준이나 배경을 보고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습니까?
    -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최근에 다시 인식하게 된 순간은 언제입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때 ‘먼저 바뀌어야 할 점’을 강조하진 않았나요?

3.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도 되는 것을 다하지 사랑의 절제입니다. 
    - 나는 신앙 안에서 어떤 부분에서 자유를 주장하지만 절제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까?
    - 내 삶의 ‘절제’는 타인을 위한 배려로 드러나고 있나요, 아니면 단지 자기 규제에 그치고 있나요?

4. 구별된 삶은 정체성의 표현입니다.
    - 나는 지금 세상 속에서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고 있나요?
    - 내 안에 있는 ‘우상의 더러운 것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물질 집착, 성공 중심적 사고 등)

2025/07/25

임마누엘의 현장 (사도행전 14편 19~28절_20250727)



Paul and Barnabas at Lystra, Jacob Pynas (Dutch, Amsterdam 1592/93–after 1650 Amsterdam?)


1. 들어가며
우리는 현재의 순간만을 살아갈 수 있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에 휘둘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과거를 감사로, 미래를 소망으로 바라보며, 오늘을 임마누엘의 현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본문 배경 –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정
바울과 바나바는 제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파송교회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 일들을 보고합니다. 극심한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동행(임마누엘)을 고백하며 감사했습니다.

특히, 바울은 안전한 길 대신 과거의 위험 지역으로 다시 들어가 성도들을 세우고 격려하며 복음을 완성합니다. 이는 단순한 인간적 용기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삶을 해석하는 믿음의 실천입니다.

3.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고난 (요셉의 형통) – 감사의 시각
신앙은 고난이 없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바울처럼, 요셉의 삶도 고난으로 가득했지만 임마누엘의 시선으로 볼 때 모든 상황이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감사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실패 같았던 상황이 축복의 통로가 되며, 절망의 자리가 찬양의 자리가 됩니다.

4. 절망 중 찬양 –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
하박국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했지만, 결국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해도... 나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리로다”라는 믿음의 찬양을 드립니다.

이 찬양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주기도문의 고백과 연결되며, 임마누엘 신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5. 나오며 – 지금 이곳이 임마누엘의 현장
우리 삶의 자리가 비록 광야 같고, 때로 감옥 같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형통한 길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임마누엘의 현장입니다.

"끝을 알면, 과정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삶이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선한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적용질문]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고난의 자리도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곳이 곧 임마누엘의 현장입니다.”

1. Ice-Breaker: 나눔의 문을 여는 질

이번 주간, 감사할 일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반대로, 힘들거나 속상했던 일이 있다면 편하게 나눠주세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고 믿기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2. 말씀 나눔: 본문과 메시지를 돌아보며
설교 내용을 바탕으로 삶과 말씀을 연결해 봅니다.

📖 POINT 1 –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여정
바울은 전도 여정에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지만, 그것을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 여러분도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는 고난의 경험이 있나요?

📖 POINT 2 – 요셉의 이야기와 형통의 의미
요셉은 종이 되고 감옥에 갇혔지만 성경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고 말합니다.

👉 여러분은 ‘형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지금 나의 삶은 형통합니까?

📖 POINT 3 – 하박국의 찬송
하박국은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 나는 삶의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 3. 삶의 적용: 나의 자리에서 임마누엘을 경험하기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는 신앙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지금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가정, 직장, 건강, 미래 등 구체적으로 나눠 보세요.

내가 지금 겪는 고난이나 불안,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현장’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기도가 필요할까요?


이번 한 주간, ‘임마누엘의 시선’으로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작은 결단을 나눠 보세요.

예: 아침마다 “하나님, 오늘도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고백하기 / 하루 한 가지 감사 기록하기



2025/07/12

최고의 기적 (사도행전 14장 8~18절_20250713)



1. 들어가며: 기적의 본질과 목적
기적은 인간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다. 하지만 기적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착각했다.

2. 기적은 ‘표적’이다
예수님도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정체성(하나님의 아들) 보다는 자기 욕망 충족에만 관심을 가졌다.
기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표지판’일 뿐, 기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3. 사도들의 메시지
사도들은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우상 숭배를 버리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외쳤다.

4. 예수님을 믿는 것이 최고의 기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기적이다.
신앙의 중심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가장 놀라운 변화이며, 최고의 기적이다.

5. 나오며
기적을 수단으로만 여기는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분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복음의 본질이자 신자의 정체성이다.




[적용질문]

1. 기적보다 하나님을 구하라

질문: 나는 기적을 바랄 때,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있는가?
실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먼저 구하며 시작하세요. “하나님, 이 상황 속에서 주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어보세요.

2. 간증 속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에 두자
질문: 내 삶의 간증을 말할 때, 하나님보다는 내 경험에 초점을 두고 있진 않은가?
실천: 간증을 나눌 때 항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드러내도록 노력해보세요. “내가 이렇게 되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고 말하세요.

3. 신앙의 목적은 '소원성취'가 아닌 '관계 회복'임을 기억하자
질문: 나는 하나님을 소원 성취의 수단처럼 대하고 있지 않은가?
실천: 하루에 한 번,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고백을 해보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자녀로서의 고민이나 기쁨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4.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하자
질문: 하나님을 진정 ‘아버지’로 믿고 의지하고 있는가?
실천: 감사기도를 해보세요. “하나님, 주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신 은혜가 제 삶의 최고의 기적입니다.”

5. 신앙의 중심을 바로 세우자
질문: 내 신앙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이신가, 나 자신인가?
실천: 이번 주에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보세요. 예배, 기도, 말씀 묵상 시간을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세워보세요.


2025/07/05

바울의 전도 (사도행전 13장 13~16절_20250706)


I will be what I will be


1. 전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전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난 후, 평생 전도에 헌신했습니다.

 2. 바울의 전도 방식
복잡한 논리나 감정적 호소가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차분히 나열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는 바울의 전도 설교가 처음으로 등장하며,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6–25절: 출애굽부터 예수님의 오심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 강조
    26–41절: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복음 선포
 
3. 하나님은 ‘이름’이 아닌 ‘행하신 일’로 알게 하심
출애굽기: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음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3)" 
하나님은 스스로를 “나는 나다 (I will be what I will be)”라고 소개하심. 
즉,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구원의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십니다.
바울은 이 점을 강조하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설명합니다.

4. 전도의 본질: ‘하나님이 주어’인 이야기
바울 설교의 모든 문장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복음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전도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한 일을 보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행하신 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요 14,11).

5. 우리의 역할: 삶으로 증거하기
전도는 신학적 논쟁이나 설득이 아니라 진솔한 간증입니다.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예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내 인생을 바꿨는지를 전하는 것이 곧 전도입니다.
하나님이 주어인 이야기를 전할 때, 그 자체로 복음이 전해집니다.

[적용질문]

1. 하나님은 내 인생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
바울처럼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삶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그 경험을 누군가에게 말해 본 적이 있나요?

2. 나는 전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전도는 "특별한 사람의 일"이라는 부담감이 있지는 않았나요?
전도를 **‘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3. 내 삶의 주어는 누구인가?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내가’ 중심인지, ‘하나님이’ 중심인지 되돌아볼 수 있을까요?
최근 내가 한 선택 중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4.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이번 주 내가 만날 사람 중 하나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그들에게 내가 겪은 하나님의 은혜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5. 나는 지금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에 있다고 믿는가?
바울처럼 하나님이 이끄시는 큰 역사 안에 있다는 신뢰와 감사가 내 마음에 있는가?
출애굽–예수님–나로 이어지는 구원의 흐름 속에 내가 서 있음을 인식하면, 내 태도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2025/06/28

하늘이 전하는 하나님의 영광 (시편 19장 1~6절_20250629)




1. 자연 속 예배의 의미
오늘은 예배당이 아닌 자연 속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햇살, 바람, 새소리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자연은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예배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신앙고백임을 되새깁니다.

2. 자연과 성경 – 두 가지 계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는 두 가지 방법을 주셨습니다:
일반 계시: 자연
특별 계시: 성경
시편 19편은 특별 계시(성경)인데, 일반계시로서 자연 천하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함을 증거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말씀처럼, 자연은 하나님의 존재를 소리 없이 증언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보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더 깊이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갈릴레이와 케플러 같은 신앙인 과학자들은 우주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했습니다.
과학은 “어떻게?”, 신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서로 다른 길로 같은 진리를 향해 갑니다.

3. 자연의 설교 – 말 없는 메시지
시편 19:2-4은 자연이 소리 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전파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설교자”입니다. 바람, 하늘, 새소리 모두가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지금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 공동체로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4. 태양처럼 차별 없는 하나님의 사랑
시편 19:4-6에서 태양은 하나님의 창조물로, 그의 사랑과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비추어짐을 상징합니다.
누구든지 그 사랑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5. 맺으며
오늘 야외예배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자연 속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배입니다.
하늘의 침묵 속 설교를 들으며, 공동체로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후 식사와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공동체성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적용질문]

  1. 자연을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일상 속에서 하늘, 바람, 햇살 같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인식한 경험이 있다면 나눠보세요.

  2. 나는 '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해 자주 묵상합니까?
    신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창조의 목적과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3. 자연 속 예배가 내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건물 안의 예배와 자연 속 예배는 무엇이 다르게 느껴졌는지, 그 차이가 내 예배 태도에 어떤 의미를 줍니까?

  4. 내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소리 없이' 전하고 있습니까?
    하늘처럼 말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기 위해, 나는 어떤 삶의 태도를 실천하고 있습니까?

  5. 과학과 신앙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까?
    신앙인으로서 과학적 사실과 신앙 사이에서 긴장이 생길 때,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합니까?

  6.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을 나는 어떻게 경험하고 나누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해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비추는 사랑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2025/06/21

듣고자 하는 이에게 대답을 (사도행전 13장 6~12절_20250622)





1.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 개인의 삶과 운명을 예측하거나, 내면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안 속에 살아가며 사주나 점술에 관심을 두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런 불안의 뿌리를 ‘죄’에서 찾습니다. 죄는 단순한 나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기오 바울 총독도 바로 이런 갈증을 느끼고 있던 인물입니다.

2. 듣고자 하는 자와 듣기를 거절하는 자
서기오 바울은 키프로스 섬의 총독으로, 권력과 부유함을 모두 갖춘 로마의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의 갈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반면, 바예수라는 인물도 등장하는데요, 그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이며 마술사였습니다. 총독의 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는,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말씀을 대적하며 총독이 믿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바예수는 진짜 복음을 알아보았지만, 그 자리에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끝내 거절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게 됩니다. 혹시 우리 마음속에도 진리를 알면서도 따르지 않으려는 모습은 없는지요?

3. 듣고자 하는 이에게 대답하는 태도
만약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신앙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드로전서 3장 15~16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1) 온유함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하게 대하며, 예의 있는 태도로 대답해야 합니다.
    2) 두려움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말해야 합니다.
    3) 선한 양심으로: 진실하게, 아는 만큼만 정직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간혹 모르는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솔직하게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 볼 문제네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성을 보여주는 좋은 태도입니다.

4. 대답하는 두 가지 방법: 간증과 전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은 **간증(Testimony)**과 **전도(Evangelism)**입니다.

간증은 예수님을 만나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솔직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꼭 대단하거나 극적인 이야기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 삶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간증의 핵심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지, 내 성공담이나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도는 복음의 핵심 내용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세상과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2)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며, 이것이 죄입니다.
    3)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4)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5. 나오며
우리는 AI 시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전쟁, 경제 불안 같은 현실을 보며 많은 이들이 근심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만족과 소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보며 누군가 “무엇이 그렇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그들에게 온유하고 정직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대답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전할 준비를 갖춘 복된 주님의 사람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질문]

1. 나의 갈증은 무엇인가요?
나는 무엇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나요? 그 불안의 근원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2. 서기오 바울처럼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요?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듣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까?
혹시 바예수처럼 진리를 알고도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3. 누군가가 내게 “왜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내 삶 속에서 복음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간단하게 말해볼 수 있을까요?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도록 정리해 본 적이 있나요?

4. 나는 온유와 두려움, 선한 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나요?
말투나 태도, 동기에서 복음을 전할 때 겸손과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하고 있나요?
혹시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교만이나, 상대를 판단하는 태도가 무심코 드러난 적은 없었는지요?

5. 내가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나요?
하나님, 인간의 죄, 예수님의 십자가, 믿음을 통한 구원 — 이 네 가지를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지점검해 보세요.

6. 나의 간증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가요,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가요?
내 간증이 다른 사람에게 “나도 예수님을 알고 싶다”는 마음을 줄 수 있는 내용인가요?
혹시 간증의 초점이 하나님의 은혜보다 내 성취나 감정에 머물러 있지는 않나요?



2025/06/07

성령충만 (사도행전 2장 1~4절_20250608)




1. 들어가며: 성령강림절 의미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생일’과 같다.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공동체에 임하심으로 교회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순절은 유대인의 절기 중 하나인 맥추절과 관련되며, 한 해의 절반을 지나 감사드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2. 성령 세례 vs 성령 충만
성령 세례는 단회적 사건: 구원의 순간, 성령께서 임하시는 결정적인 인생 변화.
성령 충만은 지속적인 삶의 태도: 매일 성령과 동행하며 말씀 따라 사는 삶.
마치 **결혼식(성령 세례)**과 **결혼생활(성령 충만)**의 차이와 같다.

3. 성령 세례의 체험
체험은 사람마다 다름: 어떤 이는 불같이, 어떤 이는 고요하게 경험.
외적 체험의 강도보다 삶의 변화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이 진짜 증거.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느니라”

4.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
성령 충만은 신비한 체험보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삶.
요 16:13: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시고, 장래의 소망을 주신다.
진리 되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 마음에 임하시고 인도하신다.

5. 나오며
성령강림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완성이다.
성령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삶 속에 임하신 분이다.
오늘도 말씀과 함께 진리의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


[적용질문]
1. 나는 성령 세례를 받았는가?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있는가?
내 삶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변화가 일어났던 순간이 있었는가?

2.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최근 나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했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인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아니면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3.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나에게 어떤 진리를 가르쳐 주셨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있는가, 아니면 신비한 체험만을 추구하고 있는가?

4. 나의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자라고 있는가?
나는 성령이 임하신 공동체(교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교회를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공동체로 여기고 있는가?

5.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요즘 내 마음을 두드리시는 성령님의 음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음성에 순종하거나 외면한 적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