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9

요셉의 하나님 (창세기 37장 1~11절_20251012)

https://de.chabad.org/parshah/article_cdo/aid/606453/jewish/Josefs-Trume.htm


1. 들어가며
    - 요셉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요셉의 하나님’, 즉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조명함. 
    - 요셉의 삶은 우리가 신앙 여정에서 겪는 하나님의 침묵과 섭리를 잘 보여준다.

2. 요셉의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창 37:1–4)
    - 요셉은 철없는 열일곱 소년이었고, 야곱의 편애로 인해 가족 간 갈등을 겪음.
    - 요셉의 복잡한 가정과 미숙함조차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준비의 도구가 되었음.
    - 우리의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섭리로 일하심.

3. 요셉의 하나님은 꿈을 통해 미래를 약속하시는 하나님 (창 37:5–9)
    - 요셉은 두 번의 꿈을 통해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받았지만, 미성숙한 태도로 형들의 미움을 삼.
    - 꿈은 단순한 자랑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였으며, 요셉은 그 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임.
    -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꿈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요셉은, 꿈을 통해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신함.

4. 요셉의 하나님은 기다림 속에서 우리를 빚으시는 하나님
    - 요셉은 꿈을 받은 후 13년 동안 노예와 죄수의 삶을 살아야 했음.
    - 애굽에서 그는 신앙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없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만으로 신앙을 지킴.
    - 요셉은 꿈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했으며,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붙듦.
    - 하나님은 꿈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꿈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연단하시는 분이심.

5. 나오며: 꿈보다 하나님
    - 요셉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평범한 삶, 보이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 고난과 불편함 속에서도 신실하게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
    - 신앙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반응하는 것이며, 요셉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임을 믿고 살아가야 함.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요셉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일하시며,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



[나눔]

관찰(Observation)
    - 창 37:4에서 형들이 “샬롬” 인사도 못 할 정도로 미워했다는 사실이 상상이 되는지? 그런 경험을 있는지?

해석(Interpretation):
    - 하나님이  기다림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성품·인격·사명 준비 관점)
    - “신앙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에 반응한다”는 말의 의미를 요셉의 사례로 설명해 보세요.

[적용]
    – 개인(Life)
        지금 내 삶에서 ‘불완전해서 숨기고 싶은 조각’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준비의 재료로 사용하시도록 어떤 순종을 시작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나 비전이 더디 보일 때, 내가 흔히 보이는 반응은 무엇입니까? 
        (비교·낙심·조급함 등) 그것을 믿음의 습관으로 어떻게 바꾸겠습니다?
        이번 주 기다림의 영성훈련을 위해, 하루 10분 ‘말씀–침묵–짧은 기도’를 실천해 보겠습니까?

    – 관계/가정(Community)
        가정/셀에서 하나님의 손길 이야기(간증) 한 가지씩 나누어 보세요. 
        서로의 기다림을 위해 어떤 구체적 중보기도를 하겠습니까?
        공동체 안에서 ‘요셉의 형들’처럼 시기 / 비교의 마음이 올라올 때, 어떤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 사역/세상(Mission)
        직장(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표현으로 한 가지 행동을 결심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2025/10/03

야곱의 길과 에서의 길: 약속 위에 세워진 교회 (창세기 36장 1~8절_20251005)

Encampment in the desert, with Mount Seir in the distance.
Coloured lithograph by Louis Haghe after David Roberts, 1849.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길만이 진정한 생명의 길이며, 교회는 인간의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져야 한다."

1. 들어가며
창세기 36장의 에서 족보는 단순한 이름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 없는 번영의 허무함과 믿음의 길을 분명히 대비시켜 줍니다. 특별히 교회 설립기념주일에, 공동체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고민합니다.

2. 야곱의 길
인간적인 수단으로 인생을 개척하려 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문제를 맡겼을 때 회복과 자유를 경험합니다.
▶ 믿음이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결단’입니다.

3. 에서의 길
외적인 번영과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믿음과 결별한 삶을 보여줍니다.
▶ 하나님 없는 성공은 본질적으로 공허합니다.

4. 교회의 길
교회는 인간의 능력이나 조건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 겉모양보다 ‘믿음과 순종’이 교회의 진정한 기반입니다.

5. 나오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약속을 붙드는 믿음의 공동체’로 살아갈 것을 고백하고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적용 문제]

1. 말씀 반추
    - 야곱과 에서의 삶을 통해 믿음과 믿음 없는 선택의 차이는 무엇이었습니까?
    - 창세기 36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까?

2. 자기 성찰
    - 나는 어떤 결정을 할 때 ‘하나님의 약속’보다 ‘조건과 형편’을 먼저 따지는 경향이 있나요? 
      최근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나누어 보세요.
    - 내 삶에서 반복되는 “자기, 자기,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나요?

3. 공동체 성찰
    - 우리 교회(또는 소그룹)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사람의 능력과 조건을 더 중요시하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공동체의 모습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4. 결단과 실천
    - 이번 주 나는 어떤 믿음의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예: 인간적인 방법 내려놓기, 말씀 앞에 순종하기,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기 등)
    - “교회는 인간의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진다”는 고백을 실제로 살아내기 위해, 
       내가 맡은 사역이나 봉사에서 바뀌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시편49편 20절 - 월간목회 2025년 10월호)

 







2025/09/25

하나님의 시간 (창세기 35장 1~15절_20250928)

Jacob at Bethel by James Smetham (1821-1889).
Oil on panel. H 11.3 x W 30.1 cm. Birmingham Museums Trust.


1. 하나님의 시간은 다시 부르시는 은혜로 시작됩니다 (1~5절)
    - 위기에 빠진 야곱에게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 이는 예배로의 초대, 과거를 새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 하나님은 완벽한 자가 아닌, 답 없는 자를 부르십니다.


2. 하나님의 시간은 과거를 정돈하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자리입니다 (6~10절)
    - 야곱은 “벧엘”에서 “엘벧엘(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 장소 중심 신앙에서 관계 중심의 신앙으로 성장합니다.
    - 예배는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 정체성을 회복하는 자리입니다.

3. 하나님의 시간은 새로운 소명을 따라 걸어가는 출발점입니다 (11~15절)
    -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 이는 과거의 야곱을 마감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의 완전한 전환입니다.
    - 우리도 예배 속에서 소명과 방향을 회복해야 합니다.



Ice-breaking
    - 요즘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분주함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나요?
    - 설교 중에 야곱의 모습에서 나와 가장 닮았다고 느낀 점은 무엇이었나요?

본문 적용 (본격적 나눔)
    -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로 다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다시 부르고 계신 '벧엘'은 어떤 자리일까요? 
        (예: 예배, 기도, 회개, 가정, 공동체 등)
    - 나의 삶에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과거나 내려놓지 못한 우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야곱이 “엘벧엘”이라 부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고백했듯이, 
        나의 신앙은 지금 ‘장소 중심’인가요, ‘관계 중심’인가요?
    -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롭게 주시길 원하시는 이름, 
        또는 회복시키시려는 정체성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삶의 적용 (결단과 기도)
    - 오늘부터 하나님의 시간을 내 삶 가운데 실천하려면 어떤 결단이 필요할까요?
        (예: 하루 10분 말씀 묵상, 기도의 자리 회복 등)


2025/09/18

천로역정 (창세기 34장 1~10절_20250921)


‘텬로력뎡’ 삽도, 기산 김준근


1. 제자리 신앙이 불러온 비극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도달했지만,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선택은 그의 가정에 큰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으며, 세상의 물질적 풍요를 좇은 결과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의 화해 후,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했지만, 세겜에서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신앙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 세상의 방법 - 돈으로 죄를 덮으려 한다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은 디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돈과 결혼을 제시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의 방식은 물질과 힘으로 문제를 덮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를 회개하고 해결할 때에만 진정한 해답을 주십니다.


3. 종교적 열정이 분노로 타락할 때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의 수치를 복수하려고 세겜 성의 남자들을 학살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신앙적 열정이라기보다는 감정적 분노에 의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의로움을 주장한 결과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신앙적 열정이 감정적 반응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4.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신 듯 보이지만, 창세기 34장의 사건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과 분노가 일어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며, 결국 그분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적용 문제]
1. 제자리 신앙: 야곱이 세겜에 머무르며 선택한 삶이 그와 그의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고, 현재 여러분이 선택하고 있는 삶의 방향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점검해 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물질적 풍요를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나요?


2. 세상의 방법: 세상에서 주는 물질적 해결책을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나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3. 신앙적 열정의 왜곡: 시므온과 레위처럼, 우리의 신앙적 열정이 때때로 감정이나 분노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을까요? 우리의 감정적 반응을 신앙의 열정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4.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창세기 34장에서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그분의 뜻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하고 따를 수 있을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세요.


유혹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우리가 신앙의 여정에서 만나는 유혹과 갈등을 하나님께 어떻게 의지하며 넘을 수 있을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를 수 있을지 다짐해보세요.

2025/09/11

브니엘의 축복– 하나님 얼굴을 본 자 (창세기 33장 1~10절_20250914)

By James Tissot - http://www.thejewishmuseum.org/collection/26303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862730



1. 브니엘의 뜻과 야곱의 변화
    -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며,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 후 그곳에 붙인 이름이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며 자신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복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존재를 바꾸는 복, 곧 이름의 변화(야곱 → 이스라엘)를 주셨다.
    브니엘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으나 살았다"고 고백한다.

2. 브니엘의 축복은 존재의 변화
    
브니엘의 축복은 상황의 변화가 아닌 존재의 변화이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브니엘의 복이다.
    야곱은 여전히 두려워하면서도 형 에서를 향해 나아가며 앞장서서 책임지는 자로 변화되었다.

3.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로서의 관계 변화
    
야곱은 에서를 만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본 것처럼 고백한다: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 33:10)”
    
하나님과 화해한 자만이 사람과도 화해할 수 있다.

4.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의 삶의 방향
    
야곱은 형 에서와 함께 하지 않고, 하나님이 명하신 가나안 땅으로 나아간다.
    브니엘의 복을 받은 사람은 ‘더 안전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길’을 선택한다.


[적용 문제]
1. 나는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이 주시기를 바라는 복은 어떤 것이었나요?
    물질입니까, 안전입니까, 아니면 존재의 변화입니까?

2.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으로, 내 삶의 태도나 관계 속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내가 여전히 두려워하고 피하고 있는 ‘에서의 얼굴’은 누구(무엇 또는 어떤 상황)입니까?

3. 하나님을 만난 후에도 내가 여전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현재 내 인생의 선택 기준은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내가 보기엔 안전해 보이는 길입니까?

4.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5. “브니엘의 축복”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존재의 변화라면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6. 야곱처럼 두려움을 안고도 한 걸음을 내딛어야 했던 순간이 있었는가?
    그때 하나님은 나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7. 하나님을 만나고도 여전히 인간적인 조치를 취한 야곱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내 삶 속에서 믿음과 인간적인 계산 사이의 갈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8. 인생의 여러 선택 앞에서, 어떤 기준으로 방향을 정하고 있는지


2025/09/05

내가 구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 (창세기 32장 24~29절_20250907)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by Rembrandt van Rijn



1. 들어가며
인간이 구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다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크고 선한 것을 준비하신다.

2. 야곱의 삶과 복의 오해
야곱은 장자권과 축복을 속임수로 빼앗았고, 외삼촌 라반 집에서 20년간 복을 얻기 위해 수고.
겉으로는 많은 복을 누린 것 같지만, 내면에는 형을 향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다.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 속에서 살았다.

3. 얍복강 사건: 복을 구하는 씨름
에서와의 재회 앞에서 야곱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드림.
한 사람(천사)과 씨름하며 복을 구함.
결국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서야, 그는 하나님께 매달림.

4. 야곱이 받은 진짜 복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 이름 ‘이스라엘’**을 주심.
더 이상 속임으로 얻는 복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새로운 정체성이 복이 되었음.
야곱이 구한 복(물질, 권세)은 사라졌고, 내면의 회복과 신앙의 변화가 진정한 복으로 주어짐.
마가복음 9장의 말씀처럼, 지체 하나를 잃더라도 영생을 얻는 것이 더 큰 복임을 상기시킴.

5. 나오며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복보다 더 크고 깊은 복을 원하신다.
자녀들의 인생 전환점에서 성공보다 변화된 인격과 믿음을 소망해야 함.
우리도 날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이 땅의 복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복을 구해야 함.


[적용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복을 가장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까?
    -그 복은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2. 야곱처럼 내 힘으로 복을 얻으려 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의 결과는 어땠고, 내 마음은 어땠는지 돌아봅시다.


3.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정체성을 바꾸셨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 그 사건이 나에게 어떤 변화와 깨달음을 주었나요?


4. 자녀나 가족, 혹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복을 구하고 있나요?
    -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더 깊은 복을 주길 원하신다고 믿습니까?


5. 오늘 나는 어떤 ‘절름발이’의 모습(예: 나의 부족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 그 상처 속에서 어떤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2025/08/30

막다른 길에서 만나는 은혜 (사도행전 16장 6~10절_20250831)

출처: bibliakorea.com



1. 막힌 길에서도 은혜가 있다
    - 신앙의 길은 고난이 없는 길이 아님.
    - 사도 바울도 복음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했지만, 여러 번 길이 막힘을 경험함.
    - 그러나 눈에 보이는 길은 막혀도 하늘 문은 열려 있고, 기도할 수 있는 은혜가 있음.

2.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다 (행 16:6~7)
    - 바울은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가려 했으나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심.
    - 기도 가운데 “거절”도 응답임을 깨달아야 함.
    -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크고, 결국 바울을 마게도냐로 인도하심.
    - 신앙은 내 욕심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며 동행하는 삶.

3. 하나님은 막힌 길을 통해 끝까지 인도하신다 (행 16:8~10)
    - 바울이 고집을 부렸음에도 환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심.
    - 모세처럼 두려움과 거절로 버티는 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심.
    - 막힘은 실패가 아니라 방향 전환의 신호.

4. 막힌 길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시작점이다
    -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한 관객이 아닌, 복음을 이루는 동역자로 초대하심.
    -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역사하심.
    - 막힘은 새로운 무대를 여는 하나님의 초대장.

5. 나오며
    -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다.
    -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인도하신다.
    -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반드시 일하신다.
    - 막힘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더 크고 선한 뜻을 기대하며 순종해야 한다.

[적용 문제]
    - 나는 신앙생활 속에서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 낙심하고 원망하는가, 아니면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가?

    - 내 기도는 “내 소원을 말하는 시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는 태도가 있는가?

    - 지금 내 삶에서 막힌 길처럼 느껴지는 상황은 무엇인가?
    - 그것을 장애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새로운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 바울이 경험한 것처럼 “거절도 응답”임을 믿는가?
    - 하나님께서 더 큰 계획을 위해 내 길을 막으셨음을 인정할 수 있는가?

    - 하나님은 나를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동역자로 부르신다.
    -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2025/08/15

쓰임 받는 자의 조건 (사도행전 16장 1~3절_20250817)


Joachim Schäfer/ www.heiligenlexikon.de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

    - 세상은 능력·스펙·평판을 보고 사람을 선택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함과 부족함까지도 사용하신다.
    - 고전 1:27 –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 약한 것을 택하신다.


2. 바울 – 부끄러운 과거를 쓰신 하나님
    - 바울은 과거에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 그러나 하나님은 그 경험을 사용해, 유대인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 부끄러운 과거조차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사역의 자산이 될 수 있다.


3. 디모데 – 약점을 쓰신 하나님
    -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율법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인물이었다.
    - 그러나 이 문화적 배경이 복음이 유대와 이방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했다.    
    - 하나님은 약점을 쓰셔서 복음 확장의 도구로 삼으신다.


4. 바울과 디모데의 공통점
    - 완벽한 조건이 없었지만,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 사역의 능력은 사람의 기술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서 온다(고전 2:4~5).


5. 나오며
    -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리란 특별한 곳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삶의 자리이다.
    - 연약함, 실패, 부끄러운 과거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 한 주간 나의 약점을 적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믿음으로 살자.


[적용 질문]
1. 나의 과거와 약점
    - 내가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나 약점은 무엇입니까?
    - 그것이 하나님 손에 들려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2. 하나님 시각으로 보기
    - 나는 여전히 세상의 기준(능력, 스펙, 배경)으로 사람과 나 자신을 평가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내 삶의 어떤 부분이 강점이 될 수 있을까요?

3. 나의 현재 자리
    - 지금 내가 서 있는 가정, 직장, 공동체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 이번 주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4. 연약함 속의 능력 경험
    - 최근에 나의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순간이 있었습니까?
    - 그 경험을 기억하며 다음 사역이나 관계 속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5. 다짐하기
    - 이번 주 나의 약점과 과거를 적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올려드리겠습니다.
    -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의 변화가 나타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025/08/08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사도행전 15장 36–41절_20250810)




Bartholomeus Breenbergh (Dutch, 1598–1657), Saints Paul and Barnabas at Lystra (Sacrifice at Lystra), 1637. Oil on wood panel; 69.5 × 92 cm, 89.9 × 112.7 × 6.3 cm (frame). Museum purchase, Fowler McCormick, Class of 1921, Fund (2006-46)
Bartholomeus Breenbergh (Dutch, 1598–1657), Saints Paul and Barnabas at Lystra (Sacrifice at Lystra), 1637.
Oil on wood panel; 69.5 × 92 cm, 89.9 × 112.7 × 6.3 cm (frame).
Museum purchase, Fowler McCormick, Class of 1921, Fund (2006-46)


들어가며

- 사람마다 선택과 판단 기준이 다르지만, 그 다름이 곧 잘못은 아니다.
- 신앙생활과 삶의 태도도 다양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성향과 은혜 때문이다.
- 우리는 다름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행 15장)
- 예루살렘 회의에서 구원의 본질(율법이 아닌 은혜)을 재확인.
- 2차 선교여행 준비 중, 마가를 데려가자는 바나바와 반대하는 바울 사이의 의견 차이로 갈라섬.
- 성경은 누가 옳았는지 판단하지 않고, 각자 다른 길로 사역했음을 기록.
- 헬라어 ‘다툼’(파록시스모스)은 ‘격려’라는 의미도 있어, 결별이 파국이 아니라 사명의 분리였음을 시사.


갈라섰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확장됨
- 바울과 실라는 발칸 반도와 로마로 복음을 확장.
- 바나바는 마가를 세워 훗날 복음 사역에 유익한 일꾼으로 만듦.
- 다름이 복음의 지경을 넓히는 계기가 됨.


각자의 부르심
- 바울: 대중 전도와 이방인의 사도.
- 바나바: 사람을 세우는 사역.
- 바나바는 초기 바울을 공동체 안에 주었고, 마가 역시 세워 마가복음 기록자로 준비시킴.
- 바울 서신 13권과 마가복음을 통한 복음 확장 배후에는 바나바의 헌신이 있었다.


나오며
- 하나님은 다름을 통해 뜻을 이루신다.
- 우리가 받는 상은 ‘무슨 일을 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순종했는가’에 달려 있다.
- 이번 주,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보내신 동역자로 보자.
- 다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삶을 살자.



[적용 문제]
1. 나는 일상생활에서 나와 다른 의견이나 방식을 가진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판단한 경험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 경험을 떠올리고 당시 나의 마음가짐을 돌아봅시다.


2. 내가 속한 공동체(가정, 직장, 교회) 안에서 바울과 바나바처럼 의견 충돌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다면, 그 갈등을 통해 어떤 선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3. 바울과 바나바는 헤어진 후에도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지금 내 삶에서 관계가 멀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를 비난하기보다 그의 강점과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4. 나는 바울처럼 주목받는 사역을 선호합니까, 아니면 바나바처럼 한 사람을 세우고 섬기는 사역에 더 마음이 끌립니까? 각자의 부르심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받은 부르심에 감사하며 충성하기 위해 노력할 부분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025/08/01

차별이 아닌 구별 (사도행전 14장 28절~ 15장 5절_20250803)



1. 들어가며 – 구별과 차별은 다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하는 ‘구별’의 표지였지, 차별의 도구가 아님.
본문 상황: 예루살렘에서 온 자들이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주장함으로 교회 안에 분열이 생김.
하나님은 구별하셨지만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차별은 사라져야 합니다.

2. 구원은 은혜이지 자격이 아닙니다 (행 15:1-21)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 선교 보고를 하며,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믿음의 문을 여셨다고 간증.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은 "할례 없이는 구원 없다"고 주장 → 논쟁 발생.
베드로는 고넬료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셨다"고 고백.
야고보는 성경(아모스 9장)을 인용하여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
구원은 율법이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다.

3. 절제는 성숙의 표지, 타인을 위한 사랑입니다
사도들은 이방인에게 네 가지를 금함 (우상의 더러운 것, 피, 목매어 죽인 것, 음행) →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별의 표시’.
고대 시장 고기 대부분은 우상 제물 → 우상숭배와 연결됨.
바울은 음행은 강하게 금하되, 음식 문제는 ‘믿음이 연약한 자에 대한 배려’로 접근 (롬 14장).
자유함도 사랑으로 절제하라. 이것이 성숙한 신앙이다.

4. 구별된 삶은 정체성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아래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함.
오늘날의 ‘우상의 더러운 것’은 돈, 지위, 명예일 수 있음. 이들이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 때 우상이 됨.
신자는 세상과 구별되되, 정죄하지 않고 사랑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5. 나오며 – 차별이 아닌 구별로 사랑을 실천합시다
갈라디아서 3:28 인용: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셨지만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구별된 정체성을 따라 사랑과 절제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는 차별 대신 구별된 삶을 선택합시다. 사랑으로, 절제로, 정체성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

[적용질문]

1. 하나님은 우리를 ‘구별’하셨지,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우월하게 여긴 경험이 있었나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
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나이, 문화, 스타일, 신앙 깊이 등)

2. 구원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 혹시 나는 누군가의 신앙 수준이나 배경을 보고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습니까?
    -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최근에 다시 인식하게 된 순간은 언제입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때 ‘먼저 바뀌어야 할 점’을 강조하진 않았나요?

3.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도 되는 것을 다하지 사랑의 절제입니다. 
    - 나는 신앙 안에서 어떤 부분에서 자유를 주장하지만 절제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까?
    - 내 삶의 ‘절제’는 타인을 위한 배려로 드러나고 있나요, 아니면 단지 자기 규제에 그치고 있나요?

4. 구별된 삶은 정체성의 표현입니다.
    - 나는 지금 세상 속에서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고 있나요?
    - 내 안에 있는 ‘우상의 더러운 것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물질 집착, 성공 중심적 사고 등)

2025/07/25

임마누엘의 현장 (사도행전 14편 19~28절_20250727)



Paul and Barnabas at Lystra, Jacob Pynas (Dutch, Amsterdam 1592/93–after 1650 Amsterdam?)


1. 들어가며
우리는 현재의 순간만을 살아갈 수 있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에 휘둘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과거를 감사로, 미래를 소망으로 바라보며, 오늘을 임마누엘의 현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본문 배경 –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정
바울과 바나바는 제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파송교회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 일들을 보고합니다. 극심한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동행(임마누엘)을 고백하며 감사했습니다.

특히, 바울은 안전한 길 대신 과거의 위험 지역으로 다시 들어가 성도들을 세우고 격려하며 복음을 완성합니다. 이는 단순한 인간적 용기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삶을 해석하는 믿음의 실천입니다.

3.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고난 (요셉의 형통) – 감사의 시각
신앙은 고난이 없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바울처럼, 요셉의 삶도 고난으로 가득했지만 임마누엘의 시선으로 볼 때 모든 상황이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감사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실패 같았던 상황이 축복의 통로가 되며, 절망의 자리가 찬양의 자리가 됩니다.

4. 절망 중 찬양 –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
하박국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했지만, 결국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해도... 나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리로다”라는 믿음의 찬양을 드립니다.

이 찬양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주기도문의 고백과 연결되며, 임마누엘 신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5. 나오며 – 지금 이곳이 임마누엘의 현장
우리 삶의 자리가 비록 광야 같고, 때로 감옥 같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형통한 길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임마누엘의 현장입니다.

"끝을 알면, 과정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삶이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선한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적용질문]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고난의 자리도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곳이 곧 임마누엘의 현장입니다.”

1. Ice-Breaker: 나눔의 문을 여는 질

이번 주간, 감사할 일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반대로, 힘들거나 속상했던 일이 있다면 편하게 나눠주세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고 믿기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2. 말씀 나눔: 본문과 메시지를 돌아보며
설교 내용을 바탕으로 삶과 말씀을 연결해 봅니다.

📖 POINT 1 –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여정
바울은 전도 여정에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지만, 그것을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 여러분도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는 고난의 경험이 있나요?

📖 POINT 2 – 요셉의 이야기와 형통의 의미
요셉은 종이 되고 감옥에 갇혔지만 성경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고 말합니다.

👉 여러분은 ‘형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지금 나의 삶은 형통합니까?

📖 POINT 3 – 하박국의 찬송
하박국은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 나는 삶의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 3. 삶의 적용: 나의 자리에서 임마누엘을 경험하기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는 신앙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지금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가정, 직장, 건강, 미래 등 구체적으로 나눠 보세요.

내가 지금 겪는 고난이나 불안,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현장’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기도가 필요할까요?


이번 한 주간, ‘임마누엘의 시선’으로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작은 결단을 나눠 보세요.

예: 아침마다 “하나님, 오늘도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고백하기 / 하루 한 가지 감사 기록하기



2025/07/12

최고의 기적 (사도행전 14장 8~18절_20250713)



1. 들어가며: 기적의 본질과 목적
기적은 인간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다. 하지만 기적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착각했다.

2. 기적은 ‘표적’이다
예수님도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정체성(하나님의 아들) 보다는 자기 욕망 충족에만 관심을 가졌다.
기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표지판’일 뿐, 기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3. 사도들의 메시지
사도들은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우상 숭배를 버리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외쳤다.

4. 예수님을 믿는 것이 최고의 기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기적이다.
신앙의 중심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가장 놀라운 변화이며, 최고의 기적이다.

5. 나오며
기적을 수단으로만 여기는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분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복음의 본질이자 신자의 정체성이다.




[적용질문]

1. 기적보다 하나님을 구하라

질문: 나는 기적을 바랄 때,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있는가?
실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먼저 구하며 시작하세요. “하나님, 이 상황 속에서 주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어보세요.

2. 간증 속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에 두자
질문: 내 삶의 간증을 말할 때, 하나님보다는 내 경험에 초점을 두고 있진 않은가?
실천: 간증을 나눌 때 항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드러내도록 노력해보세요. “내가 이렇게 되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고 말하세요.

3. 신앙의 목적은 '소원성취'가 아닌 '관계 회복'임을 기억하자
질문: 나는 하나님을 소원 성취의 수단처럼 대하고 있지 않은가?
실천: 하루에 한 번,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고백을 해보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자녀로서의 고민이나 기쁨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4.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하자
질문: 하나님을 진정 ‘아버지’로 믿고 의지하고 있는가?
실천: 감사기도를 해보세요. “하나님, 주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신 은혜가 제 삶의 최고의 기적입니다.”

5. 신앙의 중심을 바로 세우자
질문: 내 신앙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이신가, 나 자신인가?
실천: 이번 주에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보세요. 예배, 기도, 말씀 묵상 시간을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세워보세요.


2025/07/05

바울의 전도 (사도행전 13장 13~16절_20250706)


I will be what I will be


1. 전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전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난 후, 평생 전도에 헌신했습니다.

 2. 바울의 전도 방식
복잡한 논리나 감정적 호소가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차분히 나열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는 바울의 전도 설교가 처음으로 등장하며,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6–25절: 출애굽부터 예수님의 오심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 강조
    26–41절: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복음 선포
 
3. 하나님은 ‘이름’이 아닌 ‘행하신 일’로 알게 하심
출애굽기: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음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3)" 
하나님은 스스로를 “나는 나다 (I will be what I will be)”라고 소개하심. 
즉,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구원의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십니다.
바울은 이 점을 강조하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설명합니다.

4. 전도의 본질: ‘하나님이 주어’인 이야기
바울 설교의 모든 문장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복음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전도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한 일을 보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행하신 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요 14,11).

5. 우리의 역할: 삶으로 증거하기
전도는 신학적 논쟁이나 설득이 아니라 진솔한 간증입니다.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예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내 인생을 바꿨는지를 전하는 것이 곧 전도입니다.
하나님이 주어인 이야기를 전할 때, 그 자체로 복음이 전해집니다.

[적용질문]

1. 하나님은 내 인생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
바울처럼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삶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그 경험을 누군가에게 말해 본 적이 있나요?

2. 나는 전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전도는 "특별한 사람의 일"이라는 부담감이 있지는 않았나요?
전도를 **‘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3. 내 삶의 주어는 누구인가?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내가’ 중심인지, ‘하나님이’ 중심인지 되돌아볼 수 있을까요?
최근 내가 한 선택 중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4.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이번 주 내가 만날 사람 중 하나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그들에게 내가 겪은 하나님의 은혜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5. 나는 지금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에 있다고 믿는가?
바울처럼 하나님이 이끄시는 큰 역사 안에 있다는 신뢰와 감사가 내 마음에 있는가?
출애굽–예수님–나로 이어지는 구원의 흐름 속에 내가 서 있음을 인식하면, 내 태도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2025/06/28

하늘이 전하는 하나님의 영광 (시편 19장 1~6절_20250629)




1. 자연 속 예배의 의미
오늘은 예배당이 아닌 자연 속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햇살, 바람, 새소리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자연은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예배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신앙고백임을 되새깁니다.

2. 자연과 성경 – 두 가지 계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는 두 가지 방법을 주셨습니다:
일반 계시: 자연
특별 계시: 성경
시편 19편은 특별 계시(성경)인데, 일반계시로서 자연 천하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함을 증거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말씀처럼, 자연은 하나님의 존재를 소리 없이 증언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보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더 깊이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갈릴레이와 케플러 같은 신앙인 과학자들은 우주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했습니다.
과학은 “어떻게?”, 신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서로 다른 길로 같은 진리를 향해 갑니다.

3. 자연의 설교 – 말 없는 메시지
시편 19:2-4은 자연이 소리 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전파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설교자”입니다. 바람, 하늘, 새소리 모두가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지금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 공동체로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4. 태양처럼 차별 없는 하나님의 사랑
시편 19:4-6에서 태양은 하나님의 창조물로, 그의 사랑과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비추어짐을 상징합니다.
누구든지 그 사랑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5. 맺으며
오늘 야외예배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자연 속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배입니다.
하늘의 침묵 속 설교를 들으며, 공동체로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후 식사와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공동체성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적용질문]

  1. 자연을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일상 속에서 하늘, 바람, 햇살 같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인식한 경험이 있다면 나눠보세요.

  2. 나는 '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해 자주 묵상합니까?
    신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창조의 목적과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3. 자연 속 예배가 내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건물 안의 예배와 자연 속 예배는 무엇이 다르게 느껴졌는지, 그 차이가 내 예배 태도에 어떤 의미를 줍니까?

  4. 내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소리 없이' 전하고 있습니까?
    하늘처럼 말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기 위해, 나는 어떤 삶의 태도를 실천하고 있습니까?

  5. 과학과 신앙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까?
    신앙인으로서 과학적 사실과 신앙 사이에서 긴장이 생길 때,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합니까?

  6.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을 나는 어떻게 경험하고 나누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해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비추는 사랑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2025/06/21

듣고자 하는 이에게 대답을 (사도행전 13장 6~12절_20250622)





1.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 개인의 삶과 운명을 예측하거나, 내면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안 속에 살아가며 사주나 점술에 관심을 두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런 불안의 뿌리를 ‘죄’에서 찾습니다. 죄는 단순한 나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기오 바울 총독도 바로 이런 갈증을 느끼고 있던 인물입니다.

2. 듣고자 하는 자와 듣기를 거절하는 자
서기오 바울은 키프로스 섬의 총독으로, 권력과 부유함을 모두 갖춘 로마의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의 갈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반면, 바예수라는 인물도 등장하는데요, 그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이며 마술사였습니다. 총독의 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는,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말씀을 대적하며 총독이 믿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바예수는 진짜 복음을 알아보았지만, 그 자리에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끝내 거절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게 됩니다. 혹시 우리 마음속에도 진리를 알면서도 따르지 않으려는 모습은 없는지요?

3. 듣고자 하는 이에게 대답하는 태도
만약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신앙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드로전서 3장 15~16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1) 온유함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하게 대하며, 예의 있는 태도로 대답해야 합니다.
    2) 두려움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말해야 합니다.
    3) 선한 양심으로: 진실하게, 아는 만큼만 정직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간혹 모르는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솔직하게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 볼 문제네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성을 보여주는 좋은 태도입니다.

4. 대답하는 두 가지 방법: 간증과 전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은 **간증(Testimony)**과 **전도(Evangelism)**입니다.

간증은 예수님을 만나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솔직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꼭 대단하거나 극적인 이야기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 삶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간증의 핵심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지, 내 성공담이나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도는 복음의 핵심 내용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세상과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2)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며, 이것이 죄입니다.
    3)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4)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5. 나오며
우리는 AI 시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전쟁, 경제 불안 같은 현실을 보며 많은 이들이 근심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만족과 소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보며 누군가 “무엇이 그렇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그들에게 온유하고 정직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대답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전할 준비를 갖춘 복된 주님의 사람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질문]

1. 나의 갈증은 무엇인가요?
나는 무엇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나요? 그 불안의 근원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2. 서기오 바울처럼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요?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듣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까?
혹시 바예수처럼 진리를 알고도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3. 누군가가 내게 “왜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내 삶 속에서 복음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간단하게 말해볼 수 있을까요?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도록 정리해 본 적이 있나요?

4. 나는 온유와 두려움, 선한 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나요?
말투나 태도, 동기에서 복음을 전할 때 겸손과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하고 있나요?
혹시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교만이나, 상대를 판단하는 태도가 무심코 드러난 적은 없었는지요?

5. 내가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나요?
하나님, 인간의 죄, 예수님의 십자가, 믿음을 통한 구원 — 이 네 가지를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지점검해 보세요.

6. 나의 간증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가요,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가요?
내 간증이 다른 사람에게 “나도 예수님을 알고 싶다”는 마음을 줄 수 있는 내용인가요?
혹시 간증의 초점이 하나님의 은혜보다 내 성취나 감정에 머물러 있지는 않나요?



2025/06/07

성령충만 (사도행전 2장 1~4절_20250608)




1. 들어가며: 성령강림절 의미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생일’과 같다.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공동체에 임하심으로 교회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순절은 유대인의 절기 중 하나인 맥추절과 관련되며, 한 해의 절반을 지나 감사드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2. 성령 세례 vs 성령 충만
성령 세례는 단회적 사건: 구원의 순간, 성령께서 임하시는 결정적인 인생 변화.
성령 충만은 지속적인 삶의 태도: 매일 성령과 동행하며 말씀 따라 사는 삶.
마치 **결혼식(성령 세례)**과 **결혼생활(성령 충만)**의 차이와 같다.

3. 성령 세례의 체험
체험은 사람마다 다름: 어떤 이는 불같이, 어떤 이는 고요하게 경험.
외적 체험의 강도보다 삶의 변화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이 진짜 증거.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느니라”

4.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
성령 충만은 신비한 체험보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삶.
요 16:13: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시고, 장래의 소망을 주신다.
진리 되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 마음에 임하시고 인도하신다.

5. 나오며
성령강림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완성이다.
성령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삶 속에 임하신 분이다.
오늘도 말씀과 함께 진리의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


[적용질문]
1. 나는 성령 세례를 받았는가?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있는가?
내 삶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변화가 일어났던 순간이 있었는가?

2.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최근 나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했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인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아니면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3.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나에게 어떤 진리를 가르쳐 주셨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있는가, 아니면 신비한 체험만을 추구하고 있는가?

4. 나의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자라고 있는가?
나는 성령이 임하신 공동체(교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교회를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공동체로 여기고 있는가?

5.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요즘 내 마음을 두드리시는 성령님의 음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음성에 순종하거나 외면한 적은 없는가?


2025/05/17

하나님 나라의 복음 (마가복음 1장 14~15절_20250518)




1. 들어가며: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福音)’은 한자로 ‘복된 소식’이며, 영어로는 Good News, 독일어로는 Gute Nachrichten.

복음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됨:
- 예수님 존재 자체가 복음이다 – 그분의 인격과 오심이 기쁜 소식이다.
-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이 복음이다 –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이다.

마가복음 1장 14–15절은 예수님의 첫 설교이자 복음의 요약: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2. 하나님 나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의미함
창세기 1–2장: 하나님 나라의 최초 모습(‘원복’) – 완전하고 조화로운 세계.
죄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고 자기가 주인 되려는 마음에서 비롯됨.
그 결과 관계가 파괴되고, 세상은 자기중심적인 방향으로 망가짐.
예수님은 이 망가진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 오셨고, 그 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 임했다는 선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의미함

3. 하나님 나라의 삶
마태복음의 산상수훈(5–7장)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보여줌: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등이 복이 있다고 하심.
세상의 기준과 정반대지만, 하나님 나라에선 이들이 복된 자이다.

아브라함의 삶도 하나님 나라적 삶의 본보기임: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하며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삶을 드러냄.

하나님 나라의 삶은 세상과 다른 질서와 가치관을 따름.

4. 하나님 나라, 지금도 계속된다 (사도행전 29장)
예수님의 공생애는 하나님 나라 선포로 시작되었다. 
사도행전 1장: 예수께서 부활 후에 40일간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심.
사도행전 28장: 사도 바울도 로마에서 연금상태에서 ‘하나님 나라’ 전파함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나지만, 우리가 삶으로 ‘사도행전 29장’을 써야함.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이 그 의미이다.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신지 확인하고, 염려나 욕심이 아닌 예수님의 통치를 인정해야 함.

5. 마무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이며, 그것이 기쁜 이유는:
첫째, 그 나라의 왕이 예수님이시기 때문.
둘째, 죽은 후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나라기 때문.
그래서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지금 여기 내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고백이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단순한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삶의 실제이며 현재의 통치이다.



[적용 질문]

오늘 나는 내 마음과 행동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고 있는가?
내가 머무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가 보이고 있는가?
요즘 내 삶에서 방향을 바꿔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걱정으로 가득 찬 부분은 어디인가?
내 말과 행동이 가족, 동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내가 먼저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질서(온유, 화평, 긍휼 등)를 지키고 있는가?
나는 정말 주님께 “제 인생을 다스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가?

주기도문을 외울 뿐 아니라,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보이고 있는가?
이번 한 주간, 내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인가?

2025/05/11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 (마가복음 1장 9~13절_20250511)

By James Tissot - Online Collection of Brooklyn Museum; Photo: Brooklyn Museum, 2008, 00.159.50_PS2.jpg,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0195820



1. 들어가며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놀라운 축복이지만, 그 이후의 삶은 끊임없는 시험과 시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조차 세례 직후 곧바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듯이, 우리도 믿음을 지키는 가운데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2. 시험의 종류 (Test or Tamptation)
성경 속 시험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확인하시는 테스트, 사탄이 유혹하는 시험, 그리고 삶의 고난으로 찾아오는 시험 세 가지로 나뉩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원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는 테스트였지만, 뱀의 유혹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가 넘어지면서 유혹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3. 유혹을 테스토로 바꾸는 법
사탄은 인간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삼을 때, 그 어떤 유혹도 믿음을 단련시키는 시험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시험에 넘어가는 것은 사탄의 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내 욕심을 앞세운 내 책임입니다.


4. 예수님의 시험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정밀한 유혹을 받으셨지만,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도 박해 속에서 예수님의 본을 따라 믿음을 지키려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혼란스러운 가치관 속에서 유혹을 이기고, 주님의 승리에 기대어 살아가야 합니다.


5. 나오며: 우리는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하여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자기를 낮추시고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이제는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며 그분의 승리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험이 닥칠 때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이기기를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시험 가운데 있습니까?

그 시험은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시기 위한 테스트입니까, 아니면 사탄의 유혹입니까? 어떻게 분별하고 계십니까?


2. 최근 나의 삶 속에서 유혹을 테스트로 바꾸어낸 경험이 있었습니까?
있다면 그때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3. 내 삶의 주인은 지금 누구입니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4.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혹을 이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말씀을 가까이하며 예수님처럼 시험을 물리칠 수 있는 내면의 무장이 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5.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있습니까?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믿음의 성장을 기대하시는지 묵상해 보세요.

2025/04/26

복음의 시작 (마가복음 1장 1절_20250427)




1. 들어가며
인생은 목표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시작이 더 중요하다.
신앙인의 시작점은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부르심, 예수 그리스도 안의 정체성,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진정한 만족은 외적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조화를 이룰 때 온다.

2. 복음이란?
복음은 예수님 자체이며, 또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가 복음"임을 선포했고, 마가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복음으로 기록했다.
복음을 알면 현실의 고난을 이길 수 있다. 복음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참된 소망을 제공한다.

3. 복음의 시작
마가는 예수님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베드로를 통해 복음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마가는 대로마 화재와 기독교인 박해 속에 절망하던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복음의 시작"은 단순한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과 연결)
예수님은 혼돈과 절망 속에서도 새 창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 참된 왕이다.

4. 새 창조 / 새로운 피조물
마가는 자신의 실패(선교 도중 포기)와 회복(베드로와의 동역)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경험했다.
그 경험으로 절망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이 새로운 시작이 됨을 확신하며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과거 실패를 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고린도후서 5:17)

5. 나오며
우리는 세상 속에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지만, 신앙의 토대가 가장 중요하다.
삶의 기반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왕 되신 예수님이어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힘은 복음의 시작이신 예수님을 붙드는 데 있다.
한 주간도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승리하는 삶을 살자.





[적용 질문]
1. 내 삶의 시작점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달려가는 삶의 목표는 복음에 뿌리내린 것인가요, 아니면 세상의 기준에 맞춘 것인가요?

2. 실패와 실망 속에서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나요?
실패한 경험이 있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어디에서 얻고 있나요?
마가처럼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3. 예수님이 내 삶의 참된 ‘왕’이신가요?
혹시 나는 세상의 성공, 인정, 편안함을 더 높은 왕으로 삼고 있지는 않나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 오늘 결단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4.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혼돈, 공허, 어둠'은 무엇인가요?
내 인생의 어려운 영역에도 예수님이 새 창조를 시작하실 것을 믿고 있나요?
그 믿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5.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시작’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내 경험과 회복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복음의 소망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무엇인가요?

2025/04/19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 (마태복음 28장 1~4절_20250420)



오늘은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이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일어난 그 특별한 시간에 집중해 말씀을 나누어 보려 합니다.

1.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
마태복음 28장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우리말 번역이 참 절묘합니다.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 아직 하루가 시작되기 전, 어둠과 빛 사이의 조용한 순간, 그 찰나의 시간, 바로 그 틈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 십자가 후의 안식일 – 쉼이 없는 안식
한번 상상해 보세요. 제자들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의 찬양 속에 제자들도 가슴이 벅차고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며칠 사이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호산나’ 외치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는 폭도로 바뀌었고, 예수님은 처형당하셨으며,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었지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그 날, 제자들은 깊은 슬픔과 두려움, 분노와 자책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안식의 날이었지만, 그 누구도 참된 쉼을 누릴 수 없는 안식일, ‘절망의 안식일’이었습니다.

3.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제자들은 그 절망 속에서 평생 갇혀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겠지요. 안식 후 첫 날, 바쁜 일상이 다시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데 급급하다 보면, 진짜 중요한 것들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바쁨’이라는 무덤 속에 말씀과 기도, 묵상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은 그 경계의 시간을 다시 보여줍니다. 안식일과 첫날 사이, 절망과 일상 사이, 그 틈에서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소망이 사라진 과거와 불안한 미래 사이, 그 중간에 새 생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4. 증인의 자리
사랑하는 여러분, 그 빈 무덤이 혼자서는 부활의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시신이 옮겨졌을 수도 있고, 도난 당했다고 오해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그 빈 무덤에서 누구를 만났느냐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권력이나 종교 지도자들 앞에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당신을 믿고 따랐던 평범한 제자들,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변화된 삶으로, 기쁨으로,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활의 증인입니다!”

5. 나오며 – 오늘의 증인
그 증인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김00 형제가 학습세례문답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 형제는 2018년, 독일 교환학생으로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카셀의 한 아름다운 교회에서 공동체의 사랑을 처음 경험했고, 지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함부르크에 정착해 다시 열린문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김00 형제가 지금 그의 인생에서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을 지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의 고백이 새로운 부활의 증언이 되어 우리 공동체에 큰 은혜로 다가오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열린문교회 여러분, 김00 형제의 신앙 여정 위에 따뜻한 기도와 응원의 마음을 함께 모아주시길,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1.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 – 나의 경계의 시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지금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과 같은 절망과 일상 사이의 틈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소망을 어떻게 느끼고 계신가요?

2. ‘절망의 안식일’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잃고 무너졌던 제자들처럼, 슬픔과 침묵 속에 지냈던 시간이 여러분의 삶에도 있었나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나 사람을 통해 주셨던 위로와 회복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보세요.

3. 빈 무덤은 ‘증거’가 아니라 ‘만남’에서 증언된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떤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나요?
나의 신앙 고백과 삶이 누군가에게 부활의 증거가 되어줄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4. 나의 분주함은 무엇을 덮고 있는가?
요즘 삶이 너무 바빠서 말씀과 기도, 묵상을 잃어버리진 않으셨나요?
분주함이라는 무덤에서 다시 주님과 연결되기 위해 내가 회복하고 싶은 습관이나 마음은 무엇인가요?

5. 나는 부활의 증인인가?
내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삶으로 보여준 경험이 있다면 나눠보세요.
나의 오늘 하루, 나의 말과 행동, 관계 속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실천할 한 가지가 있다면?


2025/04/12

하나님 백성이십니까? (마태복음 22장 15~22절_20250413)

 



1. 들어가며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 백성이십니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으로 독일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란 눈에 보이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내는 삶을 통해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시작됐을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부터 하나님 나라는 시작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짜 왕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정치적 해방자나, 로마 제국을 무너뜨릴 유대 왕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셨지만, 왕 되심을 감추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왕위 즉위식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포함된 ‘고난주간 화요일’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십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몇 가지 비유를 통해, 열매 맺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위선을 지적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돌이키기보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2. 데나리온 이야기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질문을 준비합니다. 그 질문이 뭡니까?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이 질문 자체가 덫입니다. 예수님이 “세금을 내라”고 하시면 유대 민족주의자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고, “내지 마라”고 하시면 로마 당국에 반역자로 고발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은 본래 정치적으로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목적 하나로 뭉친 겁니다. 불의한 목적 앞에서는 얼마든지 손잡는 것이 세상의 방식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시기 전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여라” 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데나리온을 꺼내 보입니다. 이 동전은 당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얼굴이 새겨진 은화로, 황제를 신격화하는 문구도 함께 적혀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민감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돈을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우상이다” 하면서도, 생활에서는 그 돈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예수님은 이 한 마디로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십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그들의 대답은 “가이사의 것입니다”였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말씀은 단순한 슬기로운 답변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과 우선순위가 누구를 향해 있는지를 드러내는 날카로운 진단입니다.


3. 가이사의 것을 사랑한 사람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외적으로는 신앙 좋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삶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 있었습니다. 그 데나리온은 그냥 화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힘이었고, 그걸 많이 갖는 것이 곧 안전이고, 복이라고 믿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셨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진짜 메시아는 돈, 명예, 권력이었기 때문이지요.

4.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예수님께서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셨을 때, 단순히 동전만 가리킨 게 아닙니다. 그 말씀 속에는 “그렇다면 너는 누구의 것이냐?” 즉,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라는 질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창 1:27)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형상은 히브리어로 ‘첼렘’인데, 그림자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곧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림자는 본체와 떨어질 수 없고, 본체의 모양을 어렴풋이 드러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림자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황제의 형상, 데나리온의 가치를 좇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나는 하나님 백성입니까?

5. 나오며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면서, 사실상 이렇게 물으신 겁니다: “너는 누구의 것이냐? 정말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여러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은 거룩하고 종교적인 무엇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땀 흘려 일하는 그 자리, 가정과 일터, 작은 순종과 헌신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일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삶” 아니겠습니까?


[적용 질문]
- 나는 누구의 것입니까? 
- 나는 내 삶에서 누구의 형상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 내 안에 희미해진 하나님의 형상은 회복되고 있습니까?

이 질문들을 마음에 품고, 다가오는 한 주간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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